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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Mar 25. 2023

그녀 탐구 보고서 ㅡ 그녀가 꽃이라면

동백나무에 꽃망울이 맺히는가 싶더니 분홍 매화꽃이 가지마다 터다. 가지마다 별을 닮은 개나리가 노랗게 매달린다. 목련꽃도 하늘을 향해 벌어지기 시작한다. 바람을 맞고 있는 색의 꽃잎들이 무채색 공기를 조금씩 물들인다. 


그녀에게 무슨 꽃을 제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평생 그런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들꽃에 파묻힌 삶을 살았지만  감상해 본 적은 없다. 봄꽃이 예쁘지 않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런 것은 사치라는 듯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다. 동생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집과 자취방을 오가며 살림을 챙겼다. 동생들의 키가 그녀를 넘어설 무렵부터는 동생들과 자취방에서 살다. 밭에서 멀어진 것이 그녀는 무척 기뻤다. 생들의 학비를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그녀는 과자 공장에 취직했다. 갓 스무살, 꽃같은 나이였다.


그는 그녀의 화장기 없는 수수한 모습에 반했다. 공장에서 제일 어린 축이었던 그녀가 겉만 봐서는 다른 아줌마들과 구별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는 매일같이 그녀의 집에 놀러기 시작했다. 그는 가정을 일찍 꾸리고 싶다. 자신은 느끼지 못한 따뜻한 가정을 빨리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이 뭔지 아직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그가ㅡ농사 안 짓고 공장 주인 할 거다. 너는 사모님 해라ㅡ라는 말에, 그와 결혼했다. 농사 안 짓겠다는 그의 말이 녀는  좋았다.


실제로 과자 공장 사장님이 된 그와 공장일을 하느라 그녀의 20대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일손이 부족할만큼 잘 되던 공장이 하루 아침에 문을 닫게 되었을때, 그녀는 아이 둘을 데리고 다시 친정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끝까지 농사를 짓고 싶지 않아 고향에서 슈퍼 시작했다. 그렇지만 농촌에서는 슈퍼를 해도 농사를 지어야 했다. 어느새 농부가 된 그를 도우며 땅 위에서 땀을 흘리는 사이, 30년이 흘렀다.


그녀는 산수유같았다. 봄이 오는가 싶으면 어느샌가 피어 있는 산수유꽃처럼 그녀도 가족들의 곁을 조용히 지켰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족들 사이로 흩어졌고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녀의 상실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녀의 마음에 번져나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스러지는 산수유꽃의 낙화처럼 그녀의 꽃은 피지도 못하고 지고 있었다.


그녀가 따뜻해진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겨울바지를 내내 입고 있으니 마음이 안쓰러웠다. 봄바지를 사러 가자고 했다. 봄꽃 가득한 예쁜 옷을 사주고 싶었다. 녀는 더이상 옷은 필요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녀와의 동행을 포기하고 혼자 옷을 사러 나가기로 했다. 분주하게 집을 나서는데 등뒤로 중얼거리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ㅡ나, 나는 노란색이 좋.


노란색을 좋아하는 나의 그녀. 그녀의 그림자 같은 꽃잎들이 다시 노오랗게 빛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녀의 작은 가슴에 맺힌 멍울들이 조금씩 풀리는 날 작고 노란 꽃들이 피어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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