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번만은 안 돼!
작년에 극단 초인의 기획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장혜리 님께서 내 브런치를 보시더니 나를 섭외를 하셨다. 과학 융합 콘텐츠이자 과학 뮤지컬인 <울프>의 감상평을 공연장에서 해주실 수 있냐는 제안을 주셨다. 나는 내가 과거에 썼던 과학 에세이를 보고 연락을 주신 점에 대해서 매우 기뻤다. 12년도에 독립 출판으로 작가가 된 이래로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작가로서' 감상평을 말하는 것도 섭외된 것도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나를 알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는 걱정이 가득했다. 나는 섭외가 취소가 될까 봐 공황 장애와 사회 불안 증상이 있다는 걸 숨겼다. 잘못했다. 하지만 그만큼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내 역할은 간단했다. 뮤지컬 <울프>를 본 다음에 과학과 관련된 감상평을 말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편집해 놓은 대본도 있겠다. 약 5개의 질문에 바다 환경오염에 관한 내 생각을 간단히 적었다.
나의 머리에서 나온 말이고 암기 연습도 충분히 했겠다.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얼마가지 못했다. 장혜리 님과 이현진 님 그리고 과즐러 님과 함께 비대면 화상 회의를 했다. 바다 오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답할 차례가 되어서 대답을 하다가 사회 불안 증세와 공황 발작이 일어났다. 내 말에, 내가 당황해서 앞이 새하얗게 변하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장혜리 님께서 괜찮냐고 묻는데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했다. 이때 모두가 내 공황 장애와 사회 불안 증세를 정확히 진단하지는 못하겠지만 무언가 김기제라는 작가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게 비대면 만남이 끝났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나는 5개의 지문을 외우다시피 했다.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공연 당일 날에 진행자 이현진 님과 과학 커뮤니케이터 과즐러 님을 만나서 같이 뮤지컬 <울프>를 봤고 드디어 감상평을 말할 차례가 왔다.
스크립트의 예정대로 이현진 님의 질문에 과즐러 님이 한 번, 내가 한 번 대답을 하면서 세 번째 대답까지 잘 마쳤고 이제 두 개만 남았다. 딱, 두 개만 더 대답하면 작가로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첫 데뷔는 끝난다라고 생각했다. 기도를 했었는데 소원이 이루어진 걸까? 여기까지 너무 완벽했다. 공연 전에 처방받은 약 덕분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네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까먹었다. 약도 소용이 없었다. 또다시 나는 잘해야 되는데... 큰일 났다는 생각을 했고 잘하려다가 보니까 숨이 안 쉬어지고 앞이 또 새하얗게 변했다. 내가 응답을 못하자 진행자 이현진 님과 과학 커뮤니케이터 과즐러 님께서 내 뒷수습으로 나머지 모든 대답을 대신해주셨다.
네 번째 대답은 물론이거니와 마지막 대답까지 못하고 나는 온몸을 떨었다. 겨드랑이에서 땀이 났다. 그렇게 감상평은 끝났다. 무대를 망쳐서 죄송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청난 좌절감과 자책감에 빠졌다.
'아, 망했다. 이제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