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그 이후의 삶
학창 시절에 왕따를 당하고 빵셔틀이 된 나에게 쌓여있는 감정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억울함(1)과 '내가 당한 만큼 돌려주고 싶다'라는 복수심(2)이었다. 가족과 동네 친구들에게 학교에서 괴롭힘이 있음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했을 때에 사람들이 내게 조언하는 것은 인내하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여기에서 도망치면 다른 곳에서도 도망치게 된다'라는 말을 해주셨고 또 다른 집안의 어른들께서는 '초등학교 시절까지만 참으면 졸업하고 서로 보지 않을 테니까 괜찮을 것이다'라고 말해주셨다.
외할머니는 나를 교회에 데려가셨다. 종교가 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하셨다. 신께서 내가 당한 만큼의 억울함을 먼 미래에 보상해 줄 것이라고 하셨다. 복수도 하나님이 대신 처벌해 줄 거라고 하셨다. 그러나 거의 20년이 지나도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학창 시절에 내가 겪은 억울함은 풀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상처는 공황 장애와 사회 불안 증세로 이어졌다. 상황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것 같다고 느낌이 왔다. 그래도 종교가 있었기 때문에, 믿음이 있었기에 스스로를 속여서라도 자퇴 없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억울함은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막아낼 수 있었지만 문제는 복수심이었다. '이걸 어떻게 갚아주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를 괴롭힌 것을 주도하는 사람이 있었고 동조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냥 분위기가 무서워서 가만히 있는 애도 많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왕따를 일으키는 주체는 주동자가 아니라 학교였다. 그것이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학교 건물인지까지 세세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람에게 당했으면 사람에게 풀어야 하지만 어린 시절에 나는 건물에 핵폭탄을 날리고 싶었다. 건물은 그냥 원자 덩어리로 이루어진 영혼이 없는 것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그거 부순다고 상처 난 사람의 마음이 낫는 것도 아닌데 왜 사람이 아니라 건물을 무너뜨리고 싶었을까?
그리고 나이가 조금 더 들고 나서 운동을 하게 되면서 초등학교 시절에 눈만 마주치면 나를 때리던 애에게 폭력으로 되갚아주고 싶었는 데에 한 뉴스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왕따 가해자를 왕따 피해자가 샤프인가? 송곳인가?로 찌르고 달아났다가 붙잡혀서 퇴학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찔했다. 피해자는 이미 억울할 텐데 한 순간의 실수로 가해자 대신에 사회에서 페널티를 받다니 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었고 나는 다른 복수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그로부터 주위에 말하지 않고 혼자서 고통스럽게 고통의 기억들을 버텨내는 시간을 보내며 십수 년을 감내하다가 점점 내 정신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과 중학교 시절에 이미 불행을 겪었다고 생각했는 데에 이제는 성인이 되고 나서는 공황 장애와 사회 불안 증세에 시달려야 하다니... 나는 억울함과 복수심에만 몰두한 나머지 나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상처에 피부가 균열을 일으키며 찢어지고 피가 새어 나오는 데에 소독약과 연고를 바르지 않고, 그것도 이물질이 들어가는지 또 흉 지지 않는지도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내버려 둔 것이 문제였다. 정신적인 가해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세 명의 사람이 필요하다. 내 억울함을 들어줄 사람과 과하지 않는 적절한 복수를 같이 구상해 줄 사람 그리고 내 정신을 치유해 줄 의사 선생님 또는 심리상담사이다.
혹시 오해가 생길까 봐서 말하는 것인데 내가 말하는 '적절한 복수'란 학교에 가해 사실을 신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가장 이성적인 복수는 '미래에도 피해자가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가해자에 대한 복수는 서로 같이 죽는 동귀어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내 인생은 평생 가해자에게 당하고 복수한 걸로 끝나게 된다. 복수심에 눈이 멀면 간과하게 되는 점은 내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고 인생이 끝나게 된다는 점이다.
피해자인 나에 대한 정신적인 회복과 행복이 전제가 된 가해자에 대한 복수가 진정한 복수라고 말하고 싶다. 내 인생을 잘 살아나가는 것은 거창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미래에 서울시 강남구에 몇십 억짜리 아파트를 구매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약 한 시간 이내로 행복해질 수 있는 따뜻한 샤워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따위를 말한다. 과하지 않는 적절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 힘을 기르되 내 인생을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앞으로 내가 써나가는 글들을 통해서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상처에 흉터 없이 치유가 되길 희망해 본다. 새 살아, 돋아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