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숫자를 줄여라!

방관자들은 내 편도 아니지만 가해자의 편도 아니다.

by 김기제


적의 숫자를 줄여라! 모든 학교 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내 적이 아니다. 오로지 내 사건의 가해자만 신경 쓰자. 괜히 다른 사건에 가담했다가 다른 사건의 가해자까지 적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만약에 본인이 왕따를 당하거나 학교 폭력을 당하는 중이라면 혼자서 모두를 상대할 순 없다. 내가 왕따로서 4년 또 빵셔틀로 2년을 지내보고 나서 느낀 건데 혼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길 수 없다. 자신이 학교 폭력이나 왕따 피해자라면 적의 숫자를 줄여라. 주동자 한 명만 적으로 간주해라. 자세히 생각을 해보자. 어린 시절에는 '큰 범위에서 인류의 도덕과 정의'를 따져가며 친구를 사귀지 않고 '작은 범위에서 자신과 친한 사람의 도덕과 정의'를 따라간다.


그래서 성숙한 인간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사람들은 보통 친구가 싫어하는 사람을 자신도 같이 싫어하길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이 정의가 아닌데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정의'가 있고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은 스스로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틀린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요새 학생들은, 비록 초등학생일지라도 머리가 똑똑해서 가해자와 엮이면 자신의 평판이 망가지거나 대학 진학에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괴롭히는 일이 스스로 정당하다고 해도 그것이 정당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가해자의 압력이나 협박이 두려워서 참거나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주동자, 주동자와 친한 사람, 타인을 괴롭히는 걸 즐기는 사람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방관자다. 아군은 아니지만 적도 아니라는 것이다. 피해 당사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방관자들도 미울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말하는 '방관자'는 동급생들, 학부모들, 학교 선생님들, 경찰들 중에서 '일부' 사람들을 말한다. (학교 폭력 사태가 바로 잡히지 않는 사례에서 피해자를 외면한 사람들을 뜻함.)


피해자가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이 방관자들까지 적으로 돌리면, 적의 숫자만 늘어나는 꼴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피해자는 철저히 혼자다. 약자를 도와주지 않는 사회에 불만이 있을 수는 있어도 최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그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어린 나 자신이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 즉, 총성이 없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혼자가 되지 마라.


방관자는 날 돕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날 공격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방관자들은 내버려 두고 이 전쟁에서 빠지게 두어라. 도움을 청할 수 있다면 도움을 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적은 어디까지나 주동자 하나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당신을 보며 지금 당장이 고통스럽고 원망스러운데 그 와중에 부처가 되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 전쟁에서 스스로 자기 자신의 책사가 되라는 소리다. 자신이 책사라면 적의 숫자부터 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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