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라산 자락의 숲 향기가 바람에 실려 들었다. 숲으로 출근하던 때였다. 백 년 세월의 위엄을 갖춘 소나무와 건장한 키를 뽐내는 벚나무는 숲 지킴이 노릇을 하며 봄날이면 연분홍 꽃비를 날려주었다. 숲으로 산책 나온 사람들은 공기 좋은 곳에서 일하는 나를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정작 나는 아침 출근길에서 몸집이 큰 산새가 테라스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죽어 있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산새 소리기 흥겹기만 하던 나는 그때부터 낯선 슬픔에 젖어들었다. 새들의 잦은 죽음으로 인하여 숲에 보내던 눈길은 경직되어 갔다. 숲을 찬미하던 내 가슴은 녹색의 싱그러움을 밀쳐두고 산새에 대한 거처를 눈여기게 되었고 그들의 노랫소리와 울음소리에 민감해져 갔다. 산 벚꽃이 송이송이 피어나 가지를 출렁일 때 봄 숲은 옥색치마 입은 여인처럼 정갈하였으며 만발한 꽃들로 향기가 넘쳐났다. 송홧가루 휘날릴 때면 소나무는 노란 가루를 곳곳에 들어앉혔고 숲은 초록으로 짙어갔다. 검은 등 뻐꾸기가 가까이서 울어대면 라일락은 보랏빛 꿈을 진하게 피워 올렸다. 주차장이며 산책로에는 솔 이파리와 소나무에서 떨어진 쌀 알 크기의 누런 송이가 와르르 떨어져 쌓였다. 멋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산새 소리에 맞춰 즐거워하고 꽃그늘 아래서 저마다의 휴식을 취했다.
산새의 비행 사고인 듯 보이는 사체를 벚나무 밑에 묻어주고 숲길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앞산 언저리에서 산새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시끌벅적 다시 노래했다. 어쩌면 산새들이 울고 있는 소리를 내 마음대로 들었는지도 몰랐다. 숲 가지에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많았다. 다른 어미 새와 아기 새들은 여전히 숲에서 노래하고 서로를 보듬고 저들만의 신호를 보내며 별일 없는 듯 살아갔다. 오늘 죽어간 산새도 어느 둥지의 주인이었을 것이다. 새끼를 살리려고 먹이를 찾아 비행하다가 유리벽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거나, 유리에 비친 나무를 향해 날아들다 변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산새는 가엽게도 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느닷없이 유리벽 아래 몸을 눕히고 만 것이다. 상처 하나 보이지 않게 죽어간 새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의 삶이라고 이와 다를까. 위험을 안고 날아든 새의 몸짓처럼 누구도 인생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내일 죽을지 모를 시간 앞에 웃는다. 숲은 세상처럼 산새의 슬픔을 외면한 듯 의연했고, 다른 산새들은 일상처럼 무심히 지저거렸다.
벚꽃은 잠시 아름다움에 취했다가 쉽사리 쓰레기로 변하여갔고, 숲의 황홀한 봄날은 꿈처럼 사라졌다. 흩날리던 꽃받침의 낙하와 함께 산책로는 붉게 물든 꽃받침으로 수북했다. 산새의 죽음이 꽃이 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었겠냐만 꽃이 지고 나면 새들은 더 많이 죽어 갔고 산새들은 더 많이 울어댔다. 낯선 슬픔은 안타깝지만 차차 익숙한 슬픔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더위가 한창인 어느 날 밤새 폭우가 쏟아졌다. 공원 입구는 흙탕물이 갈 곳을 못 찾고 소용돌이치며 물난리가 나있었다. 밤사이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살이 나뭇가지 등 토사를 사납게 휩쓸고 내려오는 바람에 물길이 막혀 벌어진 일이었다. 긴급히 사람들을 부르고 빗속에서 복구 작업을 하면서 문득 산새들은 무사할까, 아기 새들은 폭우에 젖은 몸을 잘 피하고 있는 것일까 걱정이 되었다.
숲은 고요한 듯 보여도 고요하지 않았고 저절로 자라는 것 같지만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었다. 가지가 부러지고 몸체가 뽑혀나가도 끄떡 않고 숲의 모습을 지켜온 자생력은 숲의 정령들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새들은 그 정령들의 혼인 양 소리 내어 숲을 지켰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우리의 삶이 빛나듯 숲도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으로 울창해져 가는 것을 깨달았다.
숲에 사는 나무와 풀꽃들은 제각기 제 터에서 나고 자라며 자기들만의 질서를 가지고 살아간다. 숲은 사람 없이도 수 천 년을 질서 정연하게 살 수 있었지만 사람은 이제 숲 없이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숲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살아가는 요즈음 우리는 숲지기 산새 소리에 얼마나 귀기 우릴까. 그들의 슬픔에 마음을 내어주고, 그들의 청빈한 삶에 가슴을 내어주면서 잃어버린 내면의 질서를 찾아가면 좋겠다.
세상사는 것이 버거워 새 가슴이 되어가는 나에게 산새는 숲에 들 때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었다. 내 마음이 꺼져갈 때마다 해맑은 목청으로 위로도 하였다. 산새 소리 들리지 않는 숲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뒤 돌아보지 않고 세상 먼 곳까지 날아가는 철새도 긴 여행의 끝자락, 어딘가에 깃들 것이다. 그들의 비상은 보는 것만으로 삶의 희망이며 축복이다. 허공을 날던 몸짓이 멈추어 버린 순간에도 산새는 기도했을 것이다. 비우고 살아온 몸 하나만이 축복이었다고.
사계절 변화하는 숲에는 아름다움과 향기, 예쁜 소리가 충만하다. 특히 산새 소리는 자연이 지닌 아름다운 신호이자 숲의 언어이다. 그들만의 언어가 키워낸 숲에서 우리의 눈과 몸은 그들의 투명한 날갯짓을 배운다. 같이 살아가는 숲에 엎드려 큰절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삶을 찬미하듯 산새들이 소리 높여 지저귄다. 숲에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일렁인다. 거대한 생명체가 서로 어울려 숲의 모든 생명을 돌본다.
굳건한 나무들은 산새 소리를 들으며 가지를 뻗고 허공에서 허공으로 서로를 붙잡아 준다. 산새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들을 키우려는 작은 몸부림이었나 보다.
어느덧 나의 인생도 가을을 맞았다. 천둥소리, 빗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기쁨과 슬픔으로 충만하던 지난 시절 내 안에 깃든 모든 소리를 깨워, 산새가 애처롭게 울 때 숲으로 돌려보내고 싶어 진다. 그때 나는 눈물짓지 않고 나의 슬픈 소리들을 떠나보내리라. 나를 떠난 슬픔이 숲과 어울려질 때 안도의 숨을 내쉬고 숨죽여 그 소리를 들을 것이다. 숲의 모든 소리는 하늘과 땅을 휘돌아 내 소리를 안고, 끊임없이 숲을 뒤척이며 생명 있는 것들을 살려낼 것이라 믿는다.
숲에 누우니 앞서 죽어간 큰 새의 지저귐이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