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東邪西毒), 동사서독(東寫西讀)

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Jongim

뭐든지 시작이 어렵다.

나의 첫 글은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어디에 써야 할지 한참을 생각하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이제 그만 시작하기로 한다.


내 첫 글의 제목은 동사서독이다. 해석을 해보자면 '여기서 글을 쓰고 저기서 글을 읽는다' 정도라고 할까. 말하자면 그냥 많이 읽고 잘 쓰고 싶다는 내 마음의 표현이라고 하자. 내가 좋아하는 홍콩 영화 '동사서독(東邪西毒)'에서 가져왔으나, 내 글의 제목에 대해선 아무래도 좀 설명이 필요할 거 같아 그것으로 첫 글을 담아본다.

김용 작가의 '사조영웅전'을 근간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황량한 사막의 허름한 오두막에서 청부살인을 중개해 주는 '서독'과 매 년 경칩이 오면 서독을 찾아와 안부를 묻고 떠나는 '동사'의 사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사이사이 스쳐 가는 인물들의 사연들로 인해 그 영화는 더 맛이 있었다. 장국영, 양가휘, 양조위, 임청하, 장만옥, 유가령, 장학우 등 당대 최고의 홍콩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점도 신기했고 아름다운 영상미와 독백으로 인해 나는 그 영화에 대해 단연코 '무협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인정하곤 했다.


난 이 영화를 중국에서 유학하던 그 시절, 내가 살던 도시의 한적한 상영관에서 봤다.

단조롭고 피곤한 일상에 지쳐 티엔진의 시내를 헤매던 어느 날, 한 영화관을 지나가다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나도 모르게 홀리듯 들어갔다. 영화관 안에는 관객도 거의 없었다. 중국 상영관에서 본 유일한 영화이자, 심지어 같은 자리에서 두 회를 연달아 본 영화였다. 영화관의 거대한 스크린 가득 물결치던 장면이 왠지 모르게 애잔해서 넋 놓고 보다가 울컥하던 그때 그 감정이 어렴풋이나마 기억난다.


영화 동사서독의 엔딩 장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동사가 서독에게 올 때 가져와 농담처럼 건네주던 '마시면 지난 일을 모두 잊는다는 술 취생몽사(醉生夢死)'였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잊을 수만 있다면 매일이 새로울 거라는 대사와 함께 말이다. 너무 멋진 말이었다. 난 이후 한참이 지난 뒤에도 그 대사를 가지고 망각에 대한 문학적 논문을 집필하기도 했고, 강의에서도 써먹었다.


그러고 보니 영화 동사서독은 내 지나간 젊은 날의 곳곳에 스며있다. 생각해 보면 공부를 업으로 하는 나를 표현하는 단어도 동사서독(東寫西讀)이 딱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읽고 쓰는 일과 그에 대한 생각이 내 삶의 절반인 까닭이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나뭇가지도 아니고 네 마음일 뿐이다.'


왕가위가 '동사서독'을 찍기로 마음먹게 한 불경의 구절이다.

이제 나는 내 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쓴다. 기록하지 않은 시간들은 내 삶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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