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홀릭

몽중인 - 나의 판타지

by Jongim

비가 오면 세상은 톤다운. 살짝 어둡고 흐리지만 어딘가에 집중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빗물로 씻긴 세상은 심지어 맑고 투명하다. 글 쓰기 좋은 날이다.

올 겨울도 나름 치열하게 보냈다. 충전을 하고 다음을 준비해야 할 여름과 겨울 휴지기에도 나는 늘 무엇인가를 잡고 있다. 이것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은 삶의 태도임을 잘 알지만... 쉬면서도 편치 않은 마음은 유감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의 소산이다. 내가 정해 놓은 과제 하나 마무리하고 갑자기 허전한 마음이 들어 여기저기 정리도 하고 이 책, 저 책 뒤적이면서 시간을 보낸다.


내 전공은 판타지이다. 판타지는 현실적인 논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상상이다. 나는 인간의 꿈과 해몽, 구미호나 도깨비, 이승과 저승, 인간과 신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마음을 연구한다. '회귀 빙의 환생'이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 잡은 요즈음. 쏟아지는 콘텐츠들에 나는 열광한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간접적인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며, 한 번의 죽음으로 삶을 허망하게 마무리하고 싶지 않은 욕망을 기탁한다. 또 다른 다음 생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판타지는 '최첨단'의 기준이 거의 매일 경신되는 이 시대 사람들의 숨구멍이고 욕망이며 본질이다. 아니 몇 천 년 전에도, 몇십 년 전에도 이런 생각들은 존재했다. 긴 세월을 두고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보면 말이다.


종종 듣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도 가끔 궁금하다. 나는 왜 이런 것들을 좋아하게 되었지?

대학 때였던가... 강렬한 색감, 이천 년의 시간을 간극으로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교체되던 영화 '夢中人'이 있었다. 영화는 평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두 남녀가 각자의 꿈속에서 상대를 기억해 내는 장면들로 시작한다. 홍콩에 공연을 하러 온 남자와 조우하게 된 여자는 결국 그들이 이천 년쯤 전 진시황의 무사였고, 그가 끔찍이도 사랑했던 아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천 년을 간직한 긴 인연의 끈과 기억들은 그들을 강하게 결속시킨다.


"당신의 이천 년이나 나의 8년이나 똑같은 사랑이에요"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남자를 잃게 된 남자의 애인은 이 애절한 말을 남긴 채 자살을 하고 세상 멋진 이 두 남녀도 이천 년 전 인연을 더 이상 이어가지는 못하고 헤어진다. 여기에는 전생과 환생에 대한 설렘이 있었고 꿈에 대한 막연한 신비감이 있었다. 예쁘다기보다는 멋지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던 임청하의 쇼트커트 머리와 오렌지색 롱코트, 찬란한 햇살을 배경으로 그녀가 서 있던 홍콩의 한적한 거리도 깊이 각인되어 있다.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로망이 가득했던 20대 대학생의 입장에선 퍽이나 안타까운 엔딩이었지만 어쩌면 이 스토리로 인해 나는 판타지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난 이 영화를 기억하고 판타지 연구가 내 업이 되었으니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CCKUCTFPTA

주윤발과 임청하가 같이 부른 영화 ost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하게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참고로 나는 환생 따윈 하고 싶지 않다.

이천 년 전 그랬던 것처럼 한 쌍의 아름다운 혼으로 남길 바라며 전생의 인연에 연연하지 않았던 그녀의 마음처럼... 그냥 이번 생을 열심히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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