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운

화양연화(花樣年華)

by Jongim

벚꽃의 화사함은 유독 압도적이다. 벚꽃 그늘 아래 서 있자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나는 만개한 벚꽃보다 조금씩 날리기 시작하는 여백의 벚꽃이 훨씬 좋다. 만개한 벚꽃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이지만 내 마음으로 담아내기엔 너무 벅차다. 그리하여 낙화가 시작되면 나는 숨이 트인다. 아스라이 흩어지는 꽃잎들의 군무가 내게는 더 찬란하고 소중하다. 나는 이제 행여 비라도 내릴까, 바람이라도 불까 조바심을 내며 사라지는 벚꽃을 안타까워한다.


화양연화.. 꽃 같던 시절

벚꽃이 한창인 어느 날 은퇴를 앞둔 선배와 산책을 했다. 흐드러진 꽃길을 걸으며 대화는 자연스레 각자의 화양연화로 이어진다.


"선생님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어요?"

......

"글쎄요. 아직 안 왔던 거 아닌가 싶네요."


평소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가 비슷한 선배의 답변은 이내 납득이 된다. 나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그런 것 같아요."


그랬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아직일 수도 있는 거였다. 그 짧은 산책길의 대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아직 안 온 화양연화'는 어찌 보면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아쉬움일 테고, 또 어찌 보면 앞으로의 삶에 대한 애착과 열정 그리고 기대가 아닐는지.


https://youtu.be/Qsjh1 Xrt7 r4? si=ZQqd-uWJx_3 PJ8 lS

1940년대 가수 저우쉬안(周璇)의 '화양적연화(花樣的年華)'는 가늘게 이어지는 목소리가 퍽이나 인상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자꾸 따라 부르게 된다. 중독성이 강하다.

화양연화..

나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를 보면서 이 가슴 설레는 멋진 단어를 알게 되었다. 그 영화의 어디에도 꽃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묵직한 현악기의 선율과 꽃을 방불하는 장만옥의 화려하고 우아한 치파오가 그들의 화양연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실루엣의 아름다움을 극도로 표현하기 위해 종이 재질로 특수제작했다는 치파오와 그것을 입은 장만옥의 모습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60년대 홍콩 아파트의 비좁은 복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는 남자와 여자.. 서로에 대한 무심한 듯 그러나 결코 무심하지 않은 은밀한 관심은 철저하게 절제된 사랑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욕망과 상실마저도 절제된 감정으로 그렇게 보내버린다. 결국 영화 엔딩의 구절처럼 그 시절이 가진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없지만 어쩌면 그래서 그들의 화양연화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또 그 그다음 해에도......

벚꽃은 다시 필 것이다.

나의 화양연화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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