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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89년생의 평범하지 않았던 건강검진 이야기-1

건강검진 feat 간 내 혈관종(안전)

나는 89년생 심신이(?) 건강한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감기 한 번 걸린 적 없었고 뼈 하나 부러져 본적도 없었으며 예전부터 유행했던 사스, 신종플루는 물론 최근에 코로나마저 걸려 본 경험이 없었다. 직업 특성상 26살부터 일년에 1회 이상 꾸준히 특수검진을 받아왔으나 10년동안 충치 말곤 지금까지 아무런 잔병치레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 건강에 대해서는 항상 자만해왔고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그러다 한 번 큰 병 온다’는 부러움(?)을 많이 사기도 했다. 그만큼 자만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삶에서 건강을 1순위로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평소에 건강한 습관들이기에 참 많은 관심이 있었다. 예를 들면 물 자주 마시기, 평소 운동하기, 간식 안 먹기, 스트레스 관리하기, 노담 등등. 유일한 흠이자 매우 큰 흠이라면 술을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것…… 조금 과장해서 최근 5년은 하루도 안 빼먹고 맥주를 마셔온 것 같다. 사실 운동도 술을 먹기 위해 운동을 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술을 좋아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건강검진 예약하는데 대장내시경 vs 간 초음파 검사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한 치의 고민 없이 간 초음파 검사를 선택하였다. 대장 내시경이야 많이 해봤으니 좀 더 새롭고 쉬운 검사를 받고 싶었다…… 참고로 간 초음파 검사는 살면서 처음 받아 보는 검사였다. 그렇게 2024년 7월 6일 토요일 시간도 왜 아침 8시30분으로 잡았는지;;; 일어나자마자 호다닥 병원으로 달려가 접수를 하고 검사를 시작하였다. 요즘은 머~ 번호 앞에 Tag 찍고 눈치게임 하면서 비어있는 곳 슉슉 찾아가면 대기 없이 바로바로 다음 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처음 마주하는 간 초음파 검사에 심장 콩닥콩닥하며 얼어붙은 채로 굳어져 있었는데 검사해 주시는 선생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찡그리며 몇 번을 더 확인을 하시고는 초음파 검사는 처음이냐며 나에게 말을 거셨고 ‘아휴 어떡하냐’ 혼잣말과 함께 연신 한숨을 내쉬시며 검진자가 걱정 할 법한 모든 행동은 다 해주신 거 같았다. 그렇게 검사가 끝나 옷을 여미며 조심스레 선생님께 한 번 물어본다

“선생님, 저 혹시 어디가 많이 안 좋은가요? 초음파 검사는 처음이라서요.”

“아휴~ 저는 아무 대답도 해 드릴 수가 없슈. 이따가 의사선생님한테 ‘꼭’ 들으셔유!”

라는 선생님의 답변. 큰 병 걸린 자식을 바라보는 듯한 걱정스런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나도 모르게 엄마라고 부를 뻔 했지만 꾹 참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뒤로하고 의사선생님을 만나러 면담실에 들어갔다. 당시 의사 선생님은 간에 제법 큰 뭔가가 있는 것이 초음파 검사 통해서 확인됐고 기타 혈액 및 소변검사 결과랑 같이 봐야 좀 더 정확한 소견을 줄 수 있으니까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좋아하던 술을 드디어 5년만에 끊을 수 있게 되었고 금주 10일차 즈음 조금 더 정밀한 소견이 날아왔다.

크기는 왤케 크고 왜 불규칙하고 왜 혼합되어있는것인가 ㅠㅠ

2.5cm에 달하는 간 내 불규칙한 혼합성 병변 확인으로 인한 간 CT 검사 요망. 그렇게 난 ‘그러다 한 번 큰 병 온다’는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저주하며 가능한 빨리 CT 검사가 가능한 날을 예약했다. 검사까지 남은 시간은 3일. 아마 내 생에 가장 걱정과 생각이 많았던 3일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간암으로 돌아간 지 이제 막 1년이 지난 시점에 혹시나 나에게 문제가 있었고 그렇다면 이걸 엄마한테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혼자 수 만 번을 고민하며 간 초음파 검사 결과와 관련된 국내외 논문과 문헌을 찾아보며 정말 어떤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2024년 7월 20일 토요일 가장 빠른 아침 8시30분으로 예약은 잡은 나. 안내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여 CT촬영을 진행하였다. CT도 처음일뿐더러 조영제도 처음 맞아봤는데…… 조영제 들어가면 몸이 뜨거워 질 거라고 너무 놀라지 말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긴 했으나 이 정도로 뜨거워 질 줄은 몰랐다. 표현하자면 무협지에서 영약을 먹고 운기조식 할 때의 그 느낌이고 무협지 잘 모르시는 분들은 나루토에서 차크라 운용하는 그런 느낌일 것이다. 손끝에서 발끝 똥X끝까지 내 혈관 하나하나가 다 느껴진다. 놀라움에 잠시 걱정을 잊고 결과가 나오기만을 1시간 가량 기다린 가운데 대기자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왔고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세 번째로 다가온 나의 순번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밀리는 것이 아닌가! 알고 봤더니 아직 결과가 안 나와서 조금 더 미뤄진 것뿐인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뭔가 더 잘못된 줄 알고 의사선생님 네다섯이 모여 심각하게 나의 간에 대해 의논하고 머 그런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문뜩 병원비가 걱정이 되었는지 아까 계산했던 영수증을 주섬주섬 꺼내서 사진을 찍고 실손보험을 청구 하고 있던 나였다.

그렇게 드디어 다가온 나의 차례가 되어 들어가보니 제법 상쾌한 표정의 의사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선생님도 검사 전에는 조심조심스러우셨는데 지금은 다행이라는 듯 혈관종이라는 매우 안전한 양성 종양이라는 설명을 해주셨다. 전형적으로 크기가 큰 불규칙한 혼합성 에코에서 발견되는 종양인데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서 처음에 걱정이라고 하셨었다고 한다. 살면서 전혀 신경 쓸 필요 없는 착한 종양이니 약이나 다른 처방 없이 귀가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짝을 사들고 15일만의 금주를 끝내고 나는 우주 최고 맛있는 맥주로 하루를 즐길 수 있었다.


146000원 중에 131000원을 돌려 받았다 씨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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