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지
바람이 ‘훅’ 부니 사방으로 달아난다 놀란 가슴이 달려가지만 이 보도블럭을 하얗게 뒤덮고 빠르게 달아난다 세상의 빛을 비추는 알록달록 신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교회의 초대장 가을맞이 젓갈 시장 관광겸용이라는 맞춤 안내
아름답고 긴녹색 머리칼의 머리 여인이 기장추가 없다 말하는 미용실 개업안내장 젊은 남자가 수줍게 건네는 세상 말이 다 잘 들린다는 왕보청기 안내장 다 분양됐는데 회사보유분 일부 싸게 판다는 아파트 분양광고 발아래 구르며 밟힌 채 흙처럼 쭈그러진다
모르는 사람에게 건네는 알림장들은 언제나 죽음을 각오한다
흘러내리는 자존심이 얼마나 뭉개야 허리춤에서 서 있을지 그래서 다시 가슴게로 끌어올리며 빛을 따라 나선다. 나방의 춤사위, 삶의 날개짓 펴야 산다는 어린 여사장이 추운 골목에 서서 나누는 화장품 90%세일판매 전단지는 눈물방울이다
언제나 솔직함이 더 빨리 전달되는 연습 중 홀로 슬픈 것들이 홀로 마지막 초록을 보내는 자리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밟히는 소리마다 눈을 감는다 언제부터 내게 말해 왔던걸까 온몸이 허물어지면서도 발바닥에 짓눌러도 얼굴이 누렇게 변해도 착 엎드려 무거운 발들을 다 받아드리는 이유들 송두리째 부셔지고 썩어 흙이 되어도 전할 말이 있다는데 도무지 필요없는 불꽃같은 고뇌들을 열심히 전하고 전해야 하는 죽을 각오로 나누고 죽을 각오로 알리는 자만이 살아남는 어디든 어느 때든 떨어질 각오로 사는 낙엽
도심의 지하철 주변을 걷다보면 수많은 전단지를 받는다 그냥 받아준다 옆에 쌓인 무수한 양을 다 전달해야 집으로 갈 수 있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전단지를 내어 사업을 더 잘하려는 그 마음도 이해되기 때문이다 젊은 주인이 직접 건네는 전단지를 보면서 마음이 짠 한 적도 더러 있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어 한번더 전단지를 바라보기도 한다 자기 사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단단한 아쉬움을 모를 수 있다 얼마나 다급하고 절실한 마음인지 되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가끔씩 길거리를 도배하고 있는 무수한 간판 아래 다시 급하게 쓰인 글씨들을 보면서 그것에 담긴 주인의 마음을 읽는다 간판으로도 부족한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전단지에는 다급함과 절실함과 기원이 담겨 있다 그걸 얼마나 전달하느냐에 힘이 나타난다
세상 사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상황을 전달하는 힘이 얼마인지에 따라서 공감의 능력이 달라진다 굳이 전달하려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굳이 전단지를 만들어 전달하려는 그 마음에 한번 들어가 보면 그 사람이 살고자 하는 세상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