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나무의 꿈
아득한 동굴을 꿈꾸는 거미 한 마리
외벽을 허물고
하늘 환히 보이는 창을 여럿 달고
세상의 기둥이 되고 싶다
그의 기둥이 되고 있는 것은 이 도시의 헛간
꿰액꿰액 쏟아내는 토사물
다세대 주택 코너를 타고
휘청휘청 줄기둥을 내린다
출렁이는 시 한편 찾아
기둥을 세우려다 여러개 공허한 허방만 날린다
비틀비틀 걸어온 길 우러르며
기둥을 세우지 못한 청사진 위, 거미 한 마리
뿌리째
흔들린 그의 기둥을 끌고 간다
그는 오늘도 온전한 기둥을 세우고 싶다
-송인필「도면에 기둥을 세울 때」전문
샤마니즘적 세계관은 우주가 하나의 중심축에 꿰인 세 영역 천상, 지상, 지하로 이루어졌다고 믿으며 이 세 우주 영역은 중심축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왕래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중심축을 통해 하늘의 신들이 지상으로 내려오고 죽은 자들이 지하로 내려간다고 믿는다.
우주의 중심축은 일종의 하늘을 떠받치는‘기둥’ 혹은 세계의 기둥이라고 불리는 말뚝이다.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은 인간들의 주거지 한가운데에 세웠던 기둥과 동일시되며 사람들은 이것을 거의 신과 같은 존재로 숭배하였다. 이유는 기둥이 천상의 절대적인 존재가 있는 곳으로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도면에 기둥을 세울 때」『작가와 사회』(2004.가을)에서 ‘기둥’은 바로 화자가 바라는 바의 공간으로 이행하기 위한 통로가 된다. 하지만 허약한 허방에다 세워둔 기둥이라 화자가 바라는 바의 공간으로 가기는 쉽지 않다. 또한 이 기둥은 아래와 위가 잘린 상태의 기둥으로 지하로도 지상으로도 이어질 수 없어 지상에서만 덩그라니 존재한다.
그러기에 그는 현존하는 헛간 같은 공간이 아니라, 창이 여럿 달린 훤하고 밝은 공간에로의 이행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화자는 자신이 꿈꾸는 공간으로 가기 위해 흔들리는 기둥을 홀로 비틀거리며 끌고 간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신의 기둥을 버리지 못하고 끌고 가는 거미의 모습은 마치 희망의 통로를 찾기 위해 비틀거리는 화자자신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잘린 나무, 기둥 하지만 끝내 거미는 그 기둥을 놓지 못한다. 왜냐하면 숟한 현재의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바로 흔들리긴 하지만 그러한 공간을 통해서만이 희망의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고 현존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힘겨운 화자는 마치 자신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길을 열 듯 어두운 한 편의 도시 속에서 흔들리는 희망의 통로, 기둥을 옮기며 희망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잘린 기둥은 더 이상 하늘로 뻗어갈 기력도, 땅 속으로 뿌리를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을 맞고 있기에 온전한 기둥을 세우고자 몸부림치는 화자의 불안은 더해만 간다. 하늘로 향한 희망도 지하를 향한 삶의 굳건함도 함께 지켜내야 한다는 강한 발버둥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