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말을 하네
오늘따라 무슨 말을 자꾸만 반복한다
자세히 들어야 알아듣는 그 말은
이제 다 알아들었는데 자꾸만 반복한다
야채실 시금치가 당근 양파가 나가고 싶어
냉동실에 있는 고기들이 너무 오래 있었어
냉장실의 반찬통들이 비좁다고 난리야
들어오는 횟수는 잦는데 나가는 횟수가 느슨해
알았어 알았어 알았다고
그런데 아랫도리에 물은 왜 흘리는 거야
냉장고가 하는 말에 일일이 대답하며
내가 묻는다
당연하지 나도 숨을 쉬어야 되지 않겠니
숨을 쉴 곳이 없어
밤잠을 놓친 나는 온밤을 새워
냉장고와 소곤소곤 이야기 한다
처음 이곳에 온날 오래된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아마도 펜션을 처음 지을 때 넣어 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연식이 있다 처음에는 소리가 커서 잠들기가 쉽지 않더니 요즘은 소리는 좀 작아졌는데 간혹 자고 일어나면 주변에 물이 흥건하다
오래전에 금성 냉장고를 사서 사용했는데 성능은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하도 오래되어 지겨워서 바꾼 적은 있다 하지만 바닥에 수건을 깔고 지낼 만큼 물을 줄줄 흘리는 냉장고는 본 적도 없는데 여기 펜션 냉장고는 겉은 멀쩡한데 성능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한마디로 지붕이 날아간 꼭대기층의 이 집이랑 비슷하다
세월이 너무 흘러 온도조절이 쉽지 않아서일까 엇박자를 내는 소리도 심상찮다 칸칸이 들어찬 음식들을 모두 식히느라 지친 걸까 그래서 반항을 하는 걸까 알아 들어도 모른 척 자꾸만 집어넣는 나에 대한 푸념인가
이 물이 내부의 어디로 사라져야 하는 건데 굳이 나의 눈에 띄게 내보내는 것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냉장고에서 흘러나온 물들을 닦는다 내친김에 냉장고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옆도 위도 닦는다
그래 조금만 더 버텨라 너의 어려움을 알 것 같아 그래도 버텨줘 아이고 착하다 냉장고를 쓰다듬으면서 멈추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하는 수명이 다한 기특한 냉장고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