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 내 서재에 가득하다
이 산 저 산을 훑던 매미소리는
책상다리를 흔들어 본 뒤
문턱을 넘어
푸름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쌍계사 계곡 물소리만 남아
방안이 비좁게 보글거린다
진감선사대공탑비를어루만지던
바람의 올이 향을 피워 올린다
요새는 모두들
혼자서만사는 줄 알았더니
머흘머흘 흘러가는 구름이
지리산 정수리에 걸려
아니라고, 아니라고 나를 본다
그리움에 저려진 저 산과 강은
나의 눈부처가 되었다
차향이 가슴에 가득해 온다
현대를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음식은 더 이상 생존을 갈망하는 기본적 욕구 충족의 대상에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먹는행위는 안전 애정 친교 귀속 유행 등과도 유관하며 자신을 계속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매개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보면 화자는 서재에서 차를 마시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먼저 자연을 불러들이고 자연과 일체되는 과정에서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여는데 그 매개가 차라는 음식물이 된다
화자는 혼자서 차를 마신다 차를 마시는 동안차 맛을 이루는 여러 요소를 생각하고 이내 상념에 잠긴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나를 본다에서 화자는 혼자 차를 마시면서 혼자가 아니라 구름도 산도 모두가 벗이라는점을 자각하며 자연과의 유연한 관계를 드러낸다
나의 눈부처가 되었다라는 부분에서는 이미 화자의 눈에 산과 강의 존재는 존재에의 욕구 혹은 심미적 욕구가 완성되는 대상으로 변화된 모습이다 또한 화자는 자연과 일체 혹은 자연과의 상호공존이라는 의미를 눈부처라는 소재를 통해 전달한다
이들 욕구가 지닌 의미들은 어떤 종류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생존에 지장이 없으므로 충족되지 않고 끊임없이 삶의동기를 유발하는 심층적 사유로 나아가는 매개가 된다 또시에서 차향이 가슴에 가득해온다라는 부분에서 차를 마시는화자의 행위는 보이는 것에서나 보이지 않는 차향에 이르기까지 이미 흔들리지 않는 화자 자신을 발견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식에 대한 옳고그름에 대한 시각을 벗어던지고 스스로가 이미 무엇을 판단하는 관점에서도 벗어나 관조하고 내려놓은 무아의 상황에 놓인다 한 잔의 차를 마시는 행위에서 화자는 이미스스로 만든 상자 속에서 나와 타인을 머물게 하거나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일체의 행위에서 벗어나고 또한 스스로조차도 자신이 만들어낸 옳고 그름의 너머에 있는 자기 상자밖에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