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지인에게서 건네받은 알뿌리에서 꽤 오래 잎을 키우더니 꽃몽오리를 다섯개 달았다
가늘고 여린 풀잎같아 꽃이 피려나 하고 잎끝을 수없이 들여다 보았는데 하나둘 자리를 잡더니 꽃대를 내놓았다
그런데 백합은 처음에는 여느 꽃처럼 꽃봉오리를 하늘향해 올리다가 마지막 꽃을 피우기 직전에 꽃대가 나팔모양으로 꺾여서 자리를 잡는다 신기하다 그러려니 했는데 하루에도 몇번을 들여다 보다보니 그 순간이 눈에 들어온다
흰 옷을 입고 피는 그 꽃에서 사람들은 순결을 생각하지만 여름을 넘기는 햇살과 긴긴 하루를 부르고 답하는 날씨와 통화하는 전화기같다 보통 오월에 꽃이 핀다지만 나의 베란다에는 지금 7월 중순에 어렵게 꽃대를 올리며 나 이제 깨어났노라 신고식을 한다
내가 키우면 특별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자식 내 물건에 대한 소중함과 애지중지 여기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런데 특별할 것이 없고 오히려 좋을 것이 없다면 놓아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쥐고있는 것이 많을수록 마음이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만족이 없으면 행복이 없고 만족하면 돼지가 되기 쉽고 이 양 갈래길의 선택 속에서 언제나 그 경계를 찾곤 한다 그래도 돼지보다야 나은 삶을 살지 싶다가도 돼지가 어때서 라고 생각을 하곤 한다
백합꽃이 딱 그만큼의 혼란을 가져다 준다 내가 키우는 동안은 가늘고 작은 꽃을 겨우 겨우 미숙아처럼 피울 것이고 땅을 가진 친구에게 보내면 커다랗고 싱싱한 꽃을 피우고 새끼를 막 쳐댈 것이니 한번씩 가서 보는게 나을까 라면서 갈등한다 어느 게 더 나은 선택일까에 고민하는 사이에 백합꽃이 쳐다봐 달라고 향기를 보내며 코를 찌른다 그래 일단은 꽃이 질 때까지 보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