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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진론「가방 속의 탁상시계」

by 김지숙 작가의 집

「가방 속의 탁상시계」



저녁은 고해신부의 귀처럼

비밀을 향해 자라기 시작했다

나는 작은 보폭으로 한걸음 나와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울다 들어갔다

나는 오늘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연극을 보고

나는 맛없는 국수를 먹는다

국수집 창으로 시침처럼 달라붙은 빗물

나는 유리창에 이름을 지운다 <중략>

나의 가방은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지

내 몸의 태엽을 풀어놓고

권태로운 생일을 관리한다

지하철 입구 젖은 양동이에 담겨

나이 수대로 계산되는 꽃송이처럼

나는 국수를 새며 먹는다

혼자 듣는 뻐꾸기 소리는

저녁과 함께 사라지고

등을 보이지 않는 소리의 끝을 따라

나는 거울 속을 통과하고 있다




초현실의 세계는 숨겨진 욕망만이 아니라 무의식과 현실을 연결하는 의미로도 통상 이해된다 따라서 압축 치환 상징화 등이 꿈의 메커니즘과 동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다만 꿈은 무의식이 작품은 의식이 지배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초현실주의 시에서 무의식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언어가 사용된다 라캉 역시 언어에서 무의식 작용의 모형을 발견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과 현실의 융합 즉 언어와 무의식이 갖는 공통성은 내용의 층위와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그의 시「가방 속의 탁상시계」일부분이다 이 시에는 몇 가지 공간 층위가 나타난다 우선 먼저 국수집이라는 공간 층위가 나타난다

두 번째는 국수라는 음식층위가 나타난다 화자에게 국수는 권태로운 생일만큼이나 매력 없고 맛없는 음식이다 이곳의 유리창을 통해 화자는 환상 속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 환상 속에서 화자는 이전의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길 바란다

세 번째는 소리층위이다 팩스를 기다리는 화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만화경 역시 또 다른 환상 속으로 들어가는 매개가 된다 가방 속이라는 공간층위가 나타나고 다시 처음의 공간인 국수집의 공간으로 회귀하는 과정에서 뻐꾸기 소리를 듣고 거울을 보며 다시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 상상의 순환성이 공간 맛 소리라는 세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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