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진론 「모래 가방」

환상적 리얼리즘의 층위

by 김지숙 작가의 집

「모래 가방」


모래시계가 녹아내리는 나른한 시간

뜨거운 모래 밖으로 한 여자가

손을 내민다

어쩌면 마술 같은 생이 시작될지 몰라

누구의 비밀이 되기 싫은

텅 빈 부메랑을 날리지

또 다른 시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밤마다

가방 가득 모래바람을 넣어둔다

나는 아침의 관찰자, 커피를 마시고

모래를 쓸어낸다



환상이란 대체로 의식과 무의식이 뒤엉긴 채 현실적 욕구가 분출되어 현실을 넘어 초현실적 공간 속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환상을 분출하는 요인 가운데 꿈은 수수께끼와 같아서 현실을 변형하는 이미지와 연관된다 시「모래 가방」에서는 현실 속에서 만나는 모래시계 가방 커피 등과 같은 서로 다른 오브제들을 비현실적 공간속에 두는 과정에서 일상적 경험들은 반전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나타난 낯설음은 환상을 불러들인다

이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물을 낯선 장소에 두면 본래의 의미와 용도 기능 등은 사라지고 환상을 부르는 초현실성을 불러일으키는 원리에 기인된다.(Pierre reverdy) 거리가 먼 두 사물을 현실 속에서 근접시켜 한 공간에 두면 그들이 갖는 두 현실의 거리가 멀수록 이미지는 강렬하며 감동적 현실을 맞는다

라캉에 따르면 현실이란 꿈을 견뎌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즉 꿈이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면 그 현실은 악몽이 되므로 그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현실로 달아나고 그 현실의 억압에서 스스로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곧 다시 꿈으로 향한다

모래를 가방 가득 넣는 모순되고 혼란스럽고 기이한 현상을 드러내지만 그것은 현실이 아닌 꿈으로 원하지 않는 현실에서 이탈한 비현실 속에서 낯선 조합을 이루는데 이는 시각적으로 신비감과 환상을 부르는 비일상적 자유로움이라는 새로운 자극과 경험을 유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위상진론 「달콤한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