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물소리가 잠든 밤, 욕조에 이불을 넣고 밟는다
손잡이가 빠진 자리
영사기처럼 둥글게 흘러들어오는 불빛
문 앞에 선인장은
말없이 서 있다
립스틱과 옷가지를 내다버리고
나는 어슴한 불빛 아래 마른
밥을 먹는다
나에게 뿌리란 흔들리는 바람이지
나도 모르게 내 뒤를 따라가 보고 싶은 바람의 숨소리만 들리는
고비쯤일까?
비릿냄새가 물길을 지우고
초경을 시작하며 은퇴한 쿠마리처럼
갠지스 강에 몸을 담글까
피다만 가시가 불빛을 열고 들어올 때
강물을 말려 분을 낸 꽃이
꽃대를 밀어 올린다
문 뒤에 열리지 않는 문하나 , 벽처럼 서 있다
모호한 이미지는 때로는 신선한 환상성을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 이는 주로 사실적이면서도 서로 이질적 공간으로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시「문」에서 화자는 모두가 잠든 밤 홀로 잠들지 못하고 욕조에서 이불 빨래하는 과정에서 꿈이거나 혹은 환상 속으로 진입한다
장소와 시간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밥을 먹는 행위와 고비 사막 쿠마리 등을 들여와 생경하고 기이한 효과를 자아낸다 또한 물소리가 잠 든 밤 손잡이가 빠진 자리는 어느새 바람의 숨소리만 들리는 고비 와 쿠마리가 있는 갠지스강가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은 벽처럼 서 있는 닫힌 문일 뿐이라고 해서 공간 이동이 급하게 이루어지는 다층 공간 속에 놓인다. 그리고 그 공간의 끝은 닫힌 문으로 어떤 움직임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희망도 꿈꾸지 못하는 부정적 공간이다
화자는 마른 밥을 먹는다 뿌리가 곧 바람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화자에게는 어슴한 불빛과 잘 어울리는 마른 밥은 립스틱과 옷을 내던지고 난 후에 홀로 먹는 고독한 밥만이 존재한다 대개의 밥은 따뜻하고 배부름을 부르는 음식의 표상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밥은 이전에 알고 있던 밥이 주는 친숙한 배부름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 시에서 밥은 식사에서 오는 획일적 사고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밥이라고 다 같은 따뜻한 밥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시에서는 가장 익숙한 밥이 주는 안도감 배부름 만족감이라는 사고의 편견에서 벗어나며 불안하지만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초현실적 공간을 마련하는 독특한 상황을 만들어낸 매개가 된다.
「가방 속의 탁상시계」
저녁은 고해신부의 귀처럼
비밀을 향해 자라기 시작했다
나는 작은 보폭으로 한걸음 나와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울다 들어갔다
나는 오늘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연극을 보고
나는 맛없는 국수를 먹는다
국수집 창으로 시침처럼 달라붙은 빗물
나는 유리창에 이름을 지운다 <중략>
나의 가방은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지
내 몸의 태엽을 풀어놓고
권태로운 생일을 관리한다
지하철 입구 젖은 양동이에 담겨
나이 수대로 계산되는 꽃송이처럼
나는 국수를 새며 먹는다
혼자 듣는 뻐꾸기 소리는
저녁과 함께 사라지고
등을 보이지 않는 소리의 끝을 따라
나는 거울 속을 통과하고 있다
초현실의 세계는 숨겨진 욕망만이 아니라 무의식과 현실을 연결하는 의미로도 통상 이해된다 따라서 압축 치환 상징화 등이 꿈의 메커니즘과 동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다만 꿈은 무의식이 작품은 의식이 지배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초현실주의 시에서 무의식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언어가 사용된다 라캉 역시 언어에서 무의식 작용의 모형을 발견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과 현실의 융합 즉 언어와 무의식이 갖는 공통성은 내용의 층위와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그의 시「가방 속의 탁상시계」일부분이다 이 시에는 몇 가지 공간 층위가 나타난다 우선 먼저 국수집이라는 공간 층위가 나타난다
두 번째는 국수라는 음식층위가 나타난다 화자에게 국수는 권태로운 생일만큼이나 매력 없고 맛없는 음식이다 이곳의 유리창을 통해 화자는 환상 속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 환상 속에서 화자는 이전의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길 바란다
세 번째는 소리층위이다 팩스를 기다리는 화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만화경 역시 또 다른 환상 속으로 들어가는 매개가 된다 가방 속이라는 공간층위가 나타나고 다시 처음의 공간인 국수집의 공간으로 회귀하는 과정에서 뻐꾸기 소리를 듣고 거울을 보며 다시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 상상의 순환성이 공간 맛 소리라는 세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