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소리하나가 너를 따라다닌다
전화 통화 중일 때
전화보다 먼저 너의 귀에 달라붙는 말
‘수화기를 들어봐, 도마뱀이 받을 거야’
왼손으로 그려 넣은 악보처럼
달팽이관으로 달려드는 소리들
‘비에 젖은 신발을 말려봐
비눗방울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어
텔레비전 소리에 끼어드는 사이렌의
소리는 너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비밀번호가 잠긴 약장에서 흘러나오는 익사한 이름들
보이지 않는 곳에 고정된 눈동자는
유리창에서 깊어진다
’창밖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손가락으로 밀어봐
뒤죽박죽된 얼굴이 보일거야‘
버터처럼 녹아내리는 시계
네가 모르는 소리들이
너를 보고 있다
유리창 위의 그림자가 경악한다
너는 시간에 갇혀버린
소리의 유령
또 하나의 소리가 환청을 밀고 들어온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벙긋거리는 입술
차가운 유리벽에 문지르며 숨을 뱉어내기 시작한다
환상성이란 생각이나 욕망으로 사물을 재현하는 방식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지각이나 상상력이 바탕이 되며 편협함이나 과대망상증이 만들어낸 기이함을 토로 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지배적으로 표현한다
시「귀」에서는 전화 텔레비전 빗물 시계 숨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소리 모티브를 중심으로 소리의 층위를 다양한 재현이 나타난다 전화기 소리 텔레비전 소리 사이렌 소리 모르는 소리 급기야는 환청처럼 들리는 소리의 유령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통해 각 형상들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데포르마송 기법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여러 사물의 층위로 이루어지지만 각각을 떼어내서 구분하기 쉽지 않다
소리들이 특정한 어휘를 통해 의미가 확장되면서 상상적 체험이나 현실적 체험이 토대가 된 내적 독백에 가까운 전개방식을 택한다 이는 소리를 내는 여러 층위들이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서로 다르게 간섭하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동일한 광경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다양한 정경들이 내면에서 한번에 드러나므로써 심리적 광경 바라볼 때에는 생경한 상황을 불러들이는데 이는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개성있는 또 다른 방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