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바람

by 김지숙 작가의 집

춤바람



이곳에 온 지 꽤 오래 됐다 그동안은 머리 염색을 하지 않고 모자를 쓰고 다녔다 특별히 외출할 일도 없으니 염색도 게을러졌다. 그런데 무슨 마음이 들어서인지 추석이 가까워지자 왠지 커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생각 없이 미장원을 찾았다. 여러 미장원을 기웃대다가 마침 비슷한 연배이자 웃는 얼굴이 예쁜 오래된 손님이 아무도 없는 미장원의 문을 열었다 안심이 되었다. 퉁박스런 사람들도 꽤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틈엔가 길게 자란 머리를 커트해서 펌을 해 달라고 하니 이런 머리칼은 숱이 많아서 굳이 펌 안 해도 된다면서 커트만 하란다 머리숱도 너무 많아서 펌 안 해도 쳐내야 된다는 미장원 주인 말이 의아했다 펌에 자신이 없는 걸까

외지다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어 그냥 커트만 해달라고 했다. 커트를 시작하면서 말문이 터졌는지 자신의 신상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이가 몇 살이라는 둥 집이 어디라는 둥 이 사람은 자기 이야기만 퍼부었다. 대부분의 미용사들은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데 나는 그냥 눈만 깜박이며 듣고 있을 뿐 별 다른 반응을 하지는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웃지도 않았다.

그런데 미용사는 자기 이야기에 심취되어 열을 올린다 최근에 어떤 손님 따라서 춤을 배우러 다니는데 너무 재미있고 유익하다며 매주 월요일 저녁에 간다고 나더러 오늘 저녁에 같이 가잖다 나더러 눈썹 문신만 하면 물이 괜찮다나 여자들은 돈도 안 들고 생활에 활력을 준다나

'에잉?' '이게 무슨 소리야' 음주가무라면 손사래를 치는 나더러 춤을 추러 가자고?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나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웃고 말았다.

한참을 춤에 관한 이야기를 내놓더니 커트가 다 됐단다 돈을 지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면서 보니 좌우가 달라도 너무 다른 길이로 잘라놨다. 왼쪽은 짧게 오른쪽은 길게 앞에서 보면 잘 모르지만 양쪽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만져보면 왼쪽은 숱도 치지 않고 여름 숲을 만들어 놓고 오른쪽은 낙엽이 다 떨어진 늦가을 숱을 만들어놨다.

길이는 왼쪽이 오른쪽보다 최소 3센티 이상이 길다 언듯 보면 언발란스 커트일까 생각도 들지만 가운데 가르마를 보면 아니다 참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미장원을 한 지 20년이 넘었다고 자랑 자랑하더니.... 다시 또 그곳에 가서 머리를 만지기도 늦었다. 이미 춤바람이 나서 문을 닫고 갔을 테니까

왼쪽 오른쪽이 다른 숱과 길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한다. 어디에 빠져도 단단히 빠진 건 분명한데 직업의식을 갖다 버린 모양새다 다른 미장원들은 명절을 앞두고 여러 명이 줄을 서 있는데 이 집은 대기자가 아무도 없고 앉으면 바로 가능하기에 미용사가 나이가 들어 유행에 뒤져 그러나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아무튼 취미활동에 빠지는 것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남의 머리를 이따위로 만들어놓고 춤을 추겠다는 일념으로 그곳에 나를 데려가겠다는 작업을 했다는 게 참 어이없다 이 집에 손님이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시는 가지 않아야 할 이유도 찾았다.


춤바람이 나면 춤만 춰야지 왜 남의 머리칼을 가지고 가위춤을 췄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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