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여자 해방염원 반만년」

by 김지숙 작가의 집

어머니여

마음이 어질기가 황하 같고

그 마음 넓기가 우주천체 같고

그 기품 높기가 천상천하 같은

어머니여

사람의 본이 어디인고 하니

인간세계 본은 어머니의 자궁이요

살고 죽는 뜻은

팔만사천 사바세계

어머니 품어주신 사랑을 나눔이라

(중략)

어머니여 어머니여 어머니여

업이야 복덩이야 여식 하나 낳으실 제

댓돌 위에 흰 고무신 나란히 벗어놓고

하늘 한번 쳐다보며 혼자서 하는 말

이 신발을 살아생전 다시 신을까 말까

저녁 밥상머리 애지중지 살가운 얼굴

살아생전 다시 마주할까 말까

쿵쿵대는 가슴으로 문지방을 넘으시던

어머니여

돌쩌귀에 매인 광목띠 부여잡고

혼신의 힘으로 고함치던 어머니여

몸조리가 무엇이며 오복이 무엇이던가

애기 낳고 이레 만에 들밭에 나서실 제

인중이 삐끗하고 온몸이 허전하고

육천 마디 뼈끝에 찬바람 숭숭 불어

세상이 노오랗고 산천이 무심하다

이게 여자 팔자런가 저게 여자 죄업인가

목숨 부지 하세월에

서리서리 꽂힌 벼락

물벼락에 날벼락

일벼락에 희생벼락

청천벼락 난리벼락 전쟁벼락 강간벼락

온갖 벼락 다 맞고서 적막강산 넘어갈 제

고독이 무엇이며 외로움이 무엇인고

여필종부 삼종지도 삼강오륜 부창부수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묵묵부답 기다림 이골이 난 어머니여

(중략)

남녘땅 만 가람에 그득하신 어머니

딸들아 어서 가자 훨훨 달려오실 제

이 정성을 바칠려고 얼마나 기다렸던가

밤이면 새우잠에 낮이면 종종걸음

남성우월 여성하대 당연지사 여기면서

이제나 저제나

긴긴 세월 따질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지라

어머니 공덕 빌어 여성해방 어룹니다

(하략)


고정희 「여자 해방염원 반만년」


고정희의 「여자 해방염원 반만년」「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에서는 어머니의 마음이 황화와 같고 마음의 넓기가 우주전체 같고 기품은 천성천하 같다 한다 사람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탄생되고 죽음 또한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는 사랑이라 여긴다 살고 죽는 것조차 어머니의 품어 주신 사랑의 나눔에 있다고 하여 어머니 사랑의 고귀함을 회고 한다

또한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과정을 뼈를 깎는 고통에 비유한다 자식을 하나 낳을 때도 살아 생전에는 댓돌 위의 신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 고민할 만큼 힘들다는 산고를 통해 광목 띠를 부여잡고 혼신의 힘으로 고함치던 어머니의 모습과 아이 바로 낳고 들일 밭일 나가는 한국여자의 삶과 한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 밖에도 고정희의 「뱀과 여자-역사란 무엇인가 1 」에서는 여성의 억압이 성차별의 결함으로 표현된다 남자의 성기 남자를 발정한 개 말 뱀의 성기같은 뻣뻣함 등으로 남성의 성기에 대해 노골적으로 묘사를 하고 있는가 하면 악몽의 실오라기 젖무덤 무성한 아랫도리 등으로 여성 성기를 노골화시켜 놓았다

그의 시에서는 성적인 부분을 적나라하게 노골화함으로써 그간 여성을 억압하고 여자가 열등하다는 심리적 편견을 벗어던지게 만들고 남자와 동등하게 여자도 성에 관해 자유로울 수 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여성 해방적 표현을 드러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정희 「여자 해방투쟁을 위한 출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