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위기의 여자-여성사 연구6」

by 김지숙 작가의 집

고정희 「위기의 여자-여성사 연구6」




여자식으로 바둑판을 놨다가

남자식으로 수를 두는 날들이 있었다

여자식으로 씨를 뿌렸다가

남자식으로 추수하는 날들이 있었다

여자식으로 뿌리를 내렸다가

남자식으로 꽃피는 날들이 있었다

남자식으로 또 여자식으로

커다란 대문에는 빗장을 지르고

담장을 넘어가는 가지를 잘랐다

이 온전한 평화

이 온전한 행복

그러나 어느 날

여자식으로 사랑을 꿈꾸며

남자식으로 살아가는 날들이

우아한 중년의 식탁 위에

검고 무서운 예감을 엎질렀다

어둡고 불길한 예감 속에는

산발한 유령들이 만찬을 즐기고

사랑의 과일들이 무덤으로 누워

피묻은 달을 하관하고 있었다

먼데서 어른대는 황혼의 그림자

적막 속에 흔들리는 지상의 척도……

왜, 왜 사느냐고 메아리치는 강변에

여자 홀로 바라보는 배가 뜨고 있었다




고정희의 「위기의 여자-여성사 연구6」에서는 여필종부 삼종지도 삼강오륜 부창부수의 윤리로 묶여버린 여자의 일생과 억압된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의 일생이 하루빨리 해방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남성우월 여성하대의 세월을 당연시 여기며 살아 온 어머니의 삶을 해방시키려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 눌렸으며 펴주고 매였으면 풀어주고 사슬이면 끊어 주어라고 하여 가부장제 하에 얽매여 살던 여성들이 해방을 이루고자 염원한다 또한 시에서는 여자와 남자와의 차이를 비교하고 있는데 여자식 남자식으로 생활방식이 다름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여자로서 살아가는 삶이 호락하지 않다는 점을 검고 무거운 예감 사랑의 과일들이 무덤으로 피묻은 달을 하관 하듯 누워 있다는 표현 속에서 찾고 잇다

고정희의 「여자가 뭉치면 새 세상 된다네」에서도 화자는 남자들은 지배 전쟁 억압의 세상을 낳지만 여자들은 생명 자유 해방 평화 살림 평등을 낳는다고 하고 그런 여자가 뭉치면 새 세상이 된다고 한다 시에서 남자와 여자의 이분화된 흑백논리를 통해서 남성우월주의에 반격을 가하고 있는가 하면 남성들이 인류와 여자에게 기쁨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블평등과 억압을 낳는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를 만들어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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