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의 힘
일본이 왜곡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잡지 않고서는 새로운 민족문화를 건설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당대의 사회적 풍토 속에서 문학적 논의 또한 정치 사회의 연결고리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해방문단의 경우 문학 활동 중 가장 활발했던 부분은 단연 시단이었다
그 이유의 하나로 김동리는 신문 잡지와 같은 발표지면이 많은 것을 든다 대개의 경우 이 시기는 좌우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대립적 시각에서 몇몇 작품에 한정 지은 논의에 그치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문학적 논의는 좌익 우익이라는 이데올로기 중심의 편중된 논의보다는 시대상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며 사회 구조적 양태가 가장 잘 수용된 신문 게재시를 내재적으로 분석하여 당대 현실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지의 여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이 시기의 신문 중 하나인 <부인신보>에 게재된 시에서 표출된 시대정신으로 당대 문단의 주 흐름을 파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문의 경우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쉬운 매체로 다양한 정치적 의도로 힘이 개입되어 있으며 이에 게재된 시들을 통해 당대 정신(최동호 1985)의 주 흐름 속에 읽혀지는 시대정신이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부인신보>(서울1947.5.3-1950.6.27) 게재시를 정치적 사회적 연결고리 속에서 생각해 보건데 어떤 매체보다도 대중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되며, 이에 게재된 시 또한 정치적 사회적 영향을 비켜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게재시의 주제는 대체로 당대 정서인 해방의 감격 전쟁 혼란한 사회상 여성의 삶의 애환 애국 개인적 사랑 수동적 여성의 내면이 서정성과 더불어 나타난다
이 시기의 문학의 주제가 애국문학 계급문학 순수문학으로 삼분(김동리 1997)된 것과는 다소 이질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문단이 식민지 시대의 프로문인과 민족주의 문인에 의한 대결 양상의 이념적 대립 형태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부인신보>에 게재된 시들은 애국적 성향을 나타내는가 하면 개인적인 서정성을 표출하는 특징을 지닌다
헤겔은 시대정신이란 역사를 움직이는 형이상학적 힘이고, 객관적 정신 속에 표현되는 민족정신(최하림 1984)이라 말했다 우리의 현대시사 가운데 해방공간의 <부인신보> 게재시의 시대정신은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고 시적 형상화 과정을 거쳤고 또 당대를 지배하는 정신적인 힘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또 식민지배 질서의 붕괴와 새로운 질서의 확립이라는 극심한 변화 속에서 시대정신은 당대 현실의 사회상과 관련지어볼 때, 어떤 가능성으로 표현되었을까
평화로운 시대에 있어서 시인의 존재는 가장 비싼 문화의 장식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인이 처하여 있는 국가가 비운에 빠졌다거니 통일을 잃었다거나 하는 때 있어서 시인은 그 비싼 문화적 장식에서 떠나 혹 예언자로 또는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선구자적 지위에 놓여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헌구 「해방기념시집을 내며」(정한모외 한국현대시요람 박영사)
작품을 통해 시대정신을 분석할 경우, 좌우이데올로기의 논리보다는 작품자체의 해석이 더 중요하며 작품 속에 나타나는 보편적 타당성을 상대적 현실과 결부 짓는 논의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흔히 시인을 한 시대의 정신을 이끌어가는 선구자적 지위에 두며 이는 해방 직후 우리 민족의 위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인이 민족의 혼을 불러 일으켜야 할 책임이 크다고 말하는 이헌구의 말에서 이를 읽을 수 있다
해방공간의 <부인신보>의 발간은 그 주체가 주로 민간단체 혹은 관공서이며 해당 단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즉 독자층인 여성을 의식하여 신문을 발간한 만큼 당대 현실 속에서 요구되는 여성계몽, 선도의 의지가 나타난다 즉 당대 현실 속에서 필요한 여성의 소임 및 시국의 상황에 대한 각성 생활의 지혜 등을 게재한 점이 바로 <부인신보>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