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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

시대정신의 힘

by 김지숙 작가의 집

당대 현실 속에서 '조선 부인 대중의 두 어깨에는 중대한 임무가 부여 되여 있거니와 부인들이 각 분야에 있어 남성과 동등한 활동력과 결의와 희생적 정신으로 모국의 자주독립운동에 참여함에는 그 기본적 교양과 훈련을 하로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에 귀보의 사명은 자연 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확한 보도와 비판으로써 여성의 진로에 찬연한 炬火되고 여성의 지위향상에 한 대의 추진력이 되여 공명정대한 신념아래에서 보도의 진실성을 충분히 발휘하기를 바랍니다.(안재홍, <부인신보> 1947. 5.3 창간호)

흔히 해방공간을 여성운동의 암흑기로 규정한다. 이 규정은 여성이 여성자신의 문제에 대해 어떤 비판적 시각도 지니지 못했다는 점을 전제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성단체가 여성인권에 대한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여성이 어떤 면에서도 자신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암흑기로 규정짓는 것만은 틀림없다.

<부인신보>는 최태웅이 편집국장을 맡고, 소설가 임옥인 등이 편집활동에 참가했던 신문이다. 이 신문의 창간호에는 각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에서 요구하는 활동들을 행하고 자주독립의 운동에 희생적으로 참여하도록 권장하는 한편, 여성이 자신들의 지위 향상에도 관심을 갖기를 원하는 신문의 발간취지가 잘 나타난다. 이 신문에 게재된 시들은 식민치하에서 벗어난 혼란한 당대 현실 속에서 벗어나, 조국광영을 위해 힘쓰기를 강요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개인적 서정성에 바탕을 둔 그리움, 기다림, 향수 등을 시적으로 형상화하였다. 또한 애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발간 취지에 부합되는 시들도 그 수가 적지 않다. 본고에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당대 현실 속에서 시대정신의 고뇌를 찾고, 당대 작품과 사회 속에서 동질성을 확보하려는 기회를 갖고자 했던 시들은 사회 현실의 대응양상에 초점을 두고 사회현실의 유기적 관계를 파악하여 해방기 시대정신의 면모를 읽고자 한다.

휴즈는 시대정신을 발견하는 일은 역사가가 해내야 할 최고의 과제이지만 그것을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대 현실 속에서 대중이 가장 가까이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신문이고, 신문에 게재된 시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당대를 살다간 민족의 체험과 자각을 조명할 수 있다. 이러한 조명은 문학의 주요 기능인 사회성을 당대 문학 속의 민족정신과 관련짓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해방공간에 나타나는 문학정신을 읽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길이 된다.

아래 시들은 현실 상황을 바라보는 화자의 태도가 부정적인 성향을 담고 있는 시들이다 이러한 시들은 죽음 가난 고통 질병 등과 같은 비극적인 요소들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배태된 것이다 이 경우 부정적인 요소들 스스로 제거되거나 혹은 자신이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통해 부정적 상황은 종료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 시에는 이러한 노력이나 부정적 상황이 스스로 제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 시기는 해방에서 오는 삶의 혼란함 속에서도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남북이산이라는 시대적 고통도 겪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위의 시들을 이러한 당대 현실 속에 나타나는 고단함이 묻어난다. 이러한 고단함은 자기반성과 타인에 대한 이해로 나아간다. 당대 현실 속에서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고통에 처해 있다고 생각할 때, 자의식은 밖으로 투사되지 못하고 안으로 기울어진다. 그리고 자기희생마저 허용되지 않는 어둠 속에 자신을 격리시켜 철저한 자아성찰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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