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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시대정신의 힘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대정신의 힘

마치며



그밖에도 딩시의 상황 속에서 서정성을 지닌 시들릏 몇편 더 들 수 있다 김봉래의「말합시다」<부인신보>(서울 1947.12.21)에서는 더 늦기 전에 사랑하는 이에게 말을 하자고 한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여기고 비둘기가 사라지기 전에 수평선이 수그러지기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살자고 한다 이 시의 화자는 순간의 소중함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절실히 깨닫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樹州의「여러해 뒤」 <부인신보>(서울 1947.6.7)에서는 떠나간 님이 오지 않음을 야속하게 생각하고 다시는 울지 않겠다는 자신의 마음에게 고백하고 다짐한다 기다림에 지쳐서 오지 않는 님을 향한 사랑을 담고 있다. 그리고 긴 세월동안 그리웠던 마음조차도 오히려 보배로웠다는 얘기를 하고,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이런의 고백시들은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점을 전제로 이루어지며 이 수용의 모태로는 모성성에서 찾을 수 있다 숙이고 고백하는데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않을 수 없는 여성성의 부드러움이 잘 드러난다

서정태의「밤을 지킵시다」 <부인신보>(서울 1947.5.18)에서는 먼 산에서 산돼지가 칡넝쿨을 뒤지는가 하면 별들이 소리없이 하나둘 씩 생겨났다가는 은하수 물결에 휩싸이는 아무 걱정 없는 평온한 밤을 어머니와 더불어 지키려는 열망이 나타난다

圭南의「버들피리」<부인신보>(서울 1947.6.28)에서는 봄의 환희로운 정경을 처녀의 가슴과 더불어 세밀하게 그려놓았다 그의 시에서 봄은 바람을 곱게 실어 와서는 달팽이가 뽕나무 가지를 다듬게 하고 나비는 늘어지게 그곳에 앉아 있고 아지랑이 줄이 끊이지 않게 부지런히 우주를 빚어놓는 계절이라 한다

崔龍海의「月夜」 <부인신보>(서울 1947.7.27.)에서는 달빛이 흐르는 자연의 고요함 속에서 거룩한 삶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것을 반성하고 많은 것에 감사하는 태도를 읽을 수 있다 裴秉昌의「달」<부인신보>(서울 1947.7.11.)에서는 서창으로 떠오른 달을 맞으면서 달의 수줍은 모습을 여인의 아름다움으로 시화한다. 그리고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이 오히려 상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역설한다 밤의 정경과 더불어 달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화자는 달에게 시와 철학을 배우고자 한다

이상로의「분꽃」<부인신보>(서울 1947.7.2.)에서는 해가 들지 전에 잠시 님을 보고는 다시 해가 진 후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님을 맞기 위해 낮에는 웃지도 않는다는 분꽃의 모습을 통해 화자는 자신의 심정을 대변한다

<부인신보> 게재시들은 향수와 이산의 고통 애국선동 기다림 등을 주제로 개인적 정서를 표현한 시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 시는 또한 추억 혹은 기다림 그리움을 통해 이제껏 살아온 삶을 반성한다 시적 성향들은 주로 개인적인 사람의 고단함을 표현하거나 사랑을 주제로 떠난 님을 그리워하거나 옛일을 추억하면서 님이 돌아오기를 갈망하는가 하면 만나서 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등이 자기반성이라는 범주 속에서 통일성을 갖고 있다

또 이러한 개인적 서정성은 고향 향수 추억 혹은 자연을 향한 순수서정성이 표출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또 당대 현실 속에서 필요한 여성의 바람직한 활동상을 표현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당대 현실을 살아가는 나라일과 관련된 삶의 현장성을 담는다 이에는 활동적이고 생활력이 강한 연인상과 고전적인 아름다움 여인상이 대비되고 이를 요구하는 양면성이 나타난다

이는 특히 <부인신보>에는 주로 당대 현실의 상황을 묘사한 시들이 이들은 애도 애국 당대의 사회상을 묘사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은 정신의 작업이다 그러므로 정신의 눈으로 깊이와 넓이를 지니고 활동해야 한다(김양수 1984) 기존의 시문학사적 경향이 주로 해방공간이라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 자연으로의 도피, 혹은 좌우익의 대립된 이데올로기로 양분된 점은 감안해 볼 때 당대 현실 속에서 당대의 정서를 자기반성이라는 주제로 일축할 수 있다

해방공간의 시대정신은 한마디로 자기반성이 갖는 힘이다 기본적인 삶마저 위협당하는 혼란함 속에서, 그리고 좌우 이데올로기의 충돌 속에서 체험한 다양한 정신적 변화는 결국 우리 문학의 ‘자아성숙’과 ‘공동체 의식 자각’이라는 훈련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자각은 결국 시로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내적 표현을 거쳐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이로써 새 출발의 혼란함을 극복하고 적응하는 양상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또 생존을 위협당하는 험난했던 삶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좌절 안도감 적개심 등과 같은 감정을 겪어왔다 따라서 해방공간을 지배하는 정신적인 힘이란 당대를 살아온 개개인의 보편적 이성이 모여 그 시대를 담당하는 시대정신으로 형성된다

결국 우리민족 최대의 혼란기인 해방공간에서 대중매체인 <부인신보>에 게재된 시에서는 해방의 감격을 시로 형상화하는 한편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고 당대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면서 강대국의 논리에 휘둘리는 애달픈 조국의 처지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혼란한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아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려고 개개인의 애국심에 물을 길어 올리는 마중물 격인 자기반성이라는 보다 성숙된 시대정신의 힘을 표출하고 있다

한편 이 시기의 이러한 성향을 대표하는 시에는 이영도「제야」(『죽순』1945) 조애실 「새벽제단」(순간한보 1946) 이영희「조가」(『죽순』1947) 노영란「등불」(동인지 1947), 홍윤숙 「까마귀」(문예신보 1947) 김남조 「성숙」(연합신문 1950) 등이 있다




팜고문헌

1. 부인신보 서울 1947.5.3-1950.6.27

참고문헌

1. 김동리 문학과 인간 민음사 1997

2. 김상일 미군정과 문학 한국문학의 현장의식 지문사 1984

3. 안재홍 <부인신보> 1947. 5.3 창간호 글에서

4. 이상호 한국현대시의 의식 분석적 연구 국학 자료원

5. 이헌구 해방기념시집 중앙문화협회,1945

6. 정한모외 한국현대시요람 박영사 1974

7. 조병무외 실명시와 기법 한국문학의 현장성 지문사

8. 정창범외 현대문학의 방법 지문사 1981

9. 최동호 현대시의 정신사 열음사 1985

10. 최하림 시와 부정의 정신 문학과 지성사 1984

11. 서울신문편 『주한미군30년』행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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