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지난해 가라앉을 듯
많은 감을 달았던 대문간 감나무가
올해는 감꽃만 무성하더니 감하나 맺지 못한다
어설픈 가지치기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시던
아버지께서
오는 무성한 당신의 세월을 정리하신다
나도 지나온 나의 시간을 정리한다
지나치게 익을까
그 시기를 재면 채 익기도 전에
누군가가 채어간다
이젠 그들에게 편히 가라 한다
나 이제 올곧은 아버지의 감나무로 남아
어설픈 열매는 맺지 않을 것이므로
어릴 적 고향집에는 늘 감나무가 있었다 단감으로 먹던 감나무 홍시로 먹던 감나무 곶감 만드는 대봉감나무들이 마당에 여러 그루 있었다 그리고 감을 다 따고 나면 사다리에 올라가서는 아버지께서는 가지를 정리하시곤 했다 가지를 정리하면서 인생사를 감나무와 비교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하시곤 했다
부산 토박이다 학창 시절 범어사에 몇 번 소풍 간 적이 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범어사 옆에 등나무 군락지로 소풍을 가서 바로 옆 물이 흐르는 바위틈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만 해도 등나무가 지금처럼 우거지진 않았다 바위가 듬성듬성 놓여 있고 이따금씩 가을 소풍 즈음에 철없이 늦게 핀 등나무 꽃을 보며 신기해했다 보물 찾기도 하고 꽃으로 물을 튀기면서 물장난을 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여자아이들이라 그렇게 신바람 나게 놀기보다는 소소하게 끼리끼리 모여 조잘댐이 여기저기서 흘러넘쳤던 기억만 남아 있다
마음에 맞는 짝꿍이랑 보물을 찾다가 길을 잃고 스님들이 기거하는 작은 절간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마친 감나무에 감이 잘 익어서 땅에도 몇 개 떨어져 있고 감나무에도 달려 있었다
그 친구는 소심했던 나와 달리 당찬 친구였다 마침 우리들 말소리를 듣고는 방문을 열고 나온 스님에게 친구는
'스님 우리 저 감 하나씩 먹으면 안 되나요? '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여기는 스님들 공부하는 곳이라 들어오면 안 된다'
라고 말하고는 그냥 안으로 쑥 들어갔다
'야 빨리 가자 오면 안 된단다'
'감은?'
'당연히 안된다는 말이겠지'
'스님 아무 말도 말 안 했는데.'
라고 짝꿍이 말했고, 우리는 뒤돌아 달려 나왔다
그리고는 곧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다시 소풍에 합류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스님의 얼굴에 비친 미소를 봤다 그리고 그 미소는 무엇을 말하는지 오랫동안 궁금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범어사를 찾았고 이즈음 잘 익은 감나무를 보면 홍시를 좋아하던 짝꿍이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그 스님의 말에서 답을 찾지 못해 어리둥절하던 친구의 얼굴도 생각난다 이즈음 홍시를 보면 그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