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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면

by 김지숙 작가의 집

밀면



흥남 내호에서 냉면집 하다가 부산으로 피난 와서

우암동에 천막 치고 밀가루에 전분 섞어 국물에 짠맛 단맛 더하고

소면처럼 끊어지는 경상도식 냉면

널린 게 밀면 집이지만 제 입맛에 드는 집은

입구부터 거나하게 줄을 서서 먹는다 호졸근한 면발에 이가 시리면

비빔 밀면 물비빔으로 바꿔 먹는 맛도 고명도 서로 다른 밀면



밀면을 참 좋아했다 어쩌면 냉면보다도 더 오랜 세월 더 많은 횟수로 밀면을 먹어왔다 그런데 어떤 사고로 수혈알레르기를 겪으면서 돼지고기 땅콩 토마토 등을 못 먹게 되었다 오랜 기간의 습성을 DNA가 기억하는지 한동안은 더울 즈음이면 늘 먹지 못하는 시원한 밀면에 꽂히곤 했다

밀면은 1950년대 미군의 밀가류원조로 고구마감자 전분 등을 섞어서 실향민들이 냉면을 만든 기술로 만든 음식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밀면은 기존의 냉면에 경상도식 입맛에 맞춰 다진 양념과 자극적인 맛을 더한 것이다 솔직히 이 밀면은 칼국수나 수제비 국수 등과 같이 집에서 쉽게 해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아마도 사람들은 밀면을 더 선호하는지도 모른다

밀면은 부산사람들에게는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지만 타지 사람들에게는 토속음식으로 각인된다 부산은 동래파전 산성막걸리 곰장어구이 밀면 돼지국밥 생선회 비빔당면 해물탕 재첩국 등 수많은 음식들이 있지만 철을 가리는 음식에는 밀면이 단연 하나이다

밀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냉면보다 쉽게 끊어지는 면발과 탱탱한 면발 시원한 국물에 있다 부산에는 구석구석 시장 주변이면 거의 밀면을 파는 가게가 하나쯤은 있다 밀면으로 얽힌 기억과 추억도 부산사람이라면 한쯤은 가지고 있을 법하고 단골 밀면집도 정해져 있다 밀면육수의 맛은 천차만별이라 유명하다고 하지만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집도 있고 눈으로 보가에는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한젓가락 입에 넣고나면 실력이 바로 보여 맛이 없어 손을 놓기도 한다 그 비법은 아마도 육수의 맛과 다진 양념에 있을 것 같다

밀면을 좋아하던 나는 부산의 유명한 밀면집이라는 밀면집은 다 먹어봤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은 해당되자 않는다 천차만별이라는 말이 옳다 그래서 누가 밀면집 추천해 달라면 고민하게 된다 선호하는 입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음식에도 이렇게 다른 맛이 존재하고 그 맛이 또한 나쁘지 않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제사 지내는 법도가 집집마다 다르듯이 밀면 국물맛도 비빔밀면의 다진 양념 양념 맛도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나는 우리 민족의 창의성도 이 사소한 맛의 차이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면발 또한 다양하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시기에 먹어 본 생면 밀면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존의 입맛에 굳어버린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대가 바뀌면서 조금씩 입맛도 변하고 밀면맞고 만드는 사람 먹는 사람에 따라서 변하는 것을 느낀다

아무튼 더 이상 먹지 못하는 물밀면에 대해 미련을 버리고 시중에서 파는 냉면 육수 중에서 돼지가 들어가지 않는 육수나 다진 양념을 찾는 것으로 좋아하던 밀면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가 들면서 점점 하나씩 늘어나는 알레르기 일으키는 식품들에 대해 미련을 버리는 상황이 늘어난다

근래에는 물밀면의 그 시원하고 뻥 뚫리는 육수맛을 아쉽지만 냉면으로 달래는 마음이다 일럴 때에 쓰는 말이 꿩대신 닭 원래는 냉면 대신 밀면이 생겨난 것이지만 부산의 밀면은 냉면 대신 밀면이 아니고 내게는 밀면 대신 냉면이 되는 셈이다 예상치 못한 삶을 잘 대응하고 살아내는 것이라면 얼마나 삶을 잘 사는 것인지는 적응의 여부와 관련하여 삶의 질이 완성되고 그래서 우리는 잘 적응하고 살아왔고 살아남은 것이리라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맛에 대해 어떤 미련도 갖지 않는 것이 생의 원칙이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돼지뼈로 육수를 우린 물밀면 생각이 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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