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무
재개발로 강제 이송된 500살 주례 회화나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
온몸에 불이 붙자 몸통 반은 잘려 나가
목숨만 겨우 붙어 갈라지고 그을리고
부러진 몰골로 살아 돌아온 몸
한 때는 신성하다 술 밥 과실 앞에 놓고 제 지내며
귀하다 귀하다 대접하더니
이제는 죽일까 살릴까 애물단지 취급하며
이리 저리 좇더니 또 다른 곳에 뿌리 내리라니
“처량타 이내 신세 타령만 할 뿐이랴”
살 길 죽을 길 오락가락
내 몸과 마음 니들이 알기나 하나
주례동 회화나무는 긴 시간 고난의 행군 끝에 2023년 2월3일 사상구 근린공원 들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갈색으로 페인트 칠을 한 몸통이 그저 바라보면 애잔하다 이 나무는 사상구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이고 주례동이 재개발되면서 나무가지와 뿌리가 강제 절단되면서 불똥이 튀어 줄기들은 크게 훼손 되었고 군데군데 도장지가 난 채 객지로 쫓겨나면서 3년의 세월을 보낸 후 다시 자리잡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한때는 회화나무 특유의 잎자루가 양옆에 짝을 이루는 우상복엽羽狀複葉의 형태로 넉넉한 그늘을 제공하기도 했다 백양산 골자기 아랫마을 골새마을을 지키는 당산목으로 터를 잡았던 주례동 회화나무는 학자수라는 나무의 바램을 담아 마을에서 명석한 아이들이 나오기를 기원하고 정월 대보름이면 금줄을 나무에 두르기도 했다
이 나무는 1901년 경부철도주식회사가 경부선 철도 건설 당시 철거의 위기가 닥쳤으나 마을 사람들이 보호해달라는 호소로 철길의 경로가 바뀌었고 2017년 주례동 일대 재개발공사가 진행되면서 보호수로 지정이 되지않은 탓에 재개발조합이 베어버릴 기세였고 주민과 시님단체가 존치를 위해 변경을 요구했지만 결국 2019년 경남 진주의 이반성면한 개인 농원에 임시 이식하게 되었다 결국 보호수의 명목을 얻지 못하고 사상 근린공원으로 재이식하게 된다 해체과정에서 용접 불똥이 튀었고 속수무책으로 타들어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도장지를 내게 된다 도장지는 나무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에 일자로 뻗어 올리는 연약한 가지이다 이후 노거수로 지정되어 관리를 하고 있다
주례마을 주변에 있던 노거수에 관한 슬픈 기사를 읽었다 기사로 만나기 전부터 이리저리 마을 탐방을 즐기던 나는 이미 이 나무와는 몇차례 만나고 이 주변에 친구가 살아 오고가며 대면한 구면이었다 골새마을 구석진 곳에서 어두운 얼굴을 하고 만난 기억이 난다
낙동강주변 야생초 탐사는 꽤 오랜 세월을 해 왔다 맨 처음 시작은 어떤 사회 단체에서 주선한 동아리였다 사부로 모시던 분은 나이는 얼마 안되었지만 도사님처럼 하얀 수염을 기르고 수업 자체도 설익은 날 것으로 진행되었다 꽤 오랜 기간을 다양한 야생초에 관해 알려주었다 주로 식용식물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먹을것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후, 틈틈이 혼자 야생초 탐사를 한 적도 있고 주로 옥시인과 함께 하거나 또 때에 따라서는 대학친구 혹은 사회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만난 여러 친구들과 함께 했다 생각해 보면 족히 이십년은 지난 일이다
일만 시간의 법칙을 적용한다면 충분히 또 넉넉히 특정 분야 야생화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 있다. 하지만 나름 숲에 들어가기를 극도로 싫어해서 활동이 제한적이라 풀이나 열매는 대체로 많이 봐 왔고, 잘 알지만 겨울이 되어 잎이 다 떨어진 나무나 버섯에 대해서만은 아직도 잘 구분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없다
나무를 구분하는 것은 물론 잎 열매로는 비교적 가능하다 하지만 나무는 그렇게 구분하거나 주로 줄기의 겉껍질 형태로 구분한다 사람의 지문이 다른 동물의 지문과 다른 것처럼 나무의 줄기는 성체가 되면 정말 다르다 같은 종일 경우는 비교적 비슷한 형태를 띠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식물체 중에서 커다란 당산목같은 멋진 노거수를 사랑한다 물론 내 전생의 꽃인 난초나 연꽃류도 좋아한다 한때는 부산 경남 낙동강 일대의 노거수를 찾아서 일일이 사진으로 남긴 적도 있었다. 노거수처럼 비바람에 그덕없이 의연한 자태로 그렇거니 그렇거니 하면서 한 세상 그렇게 멋지게 잘 살아내고 싶다. 여전히 오래된 나무를 만나면 경외감을 낀다. 잘 관리된 장소의 오래된 나무보다는 대체로 방치된 노거수에 더 마음이 간다
낙동강가에 남았던 노거수들이 짤려 뿌리를 다 드러내고 나동그라진 모습을 보는 일은 참 마음이 아팠다 낙동강 주변에 그런 나무들이 많았다. 비교적 오랜 세월 농사를 짓고 살던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유실수도 그랬다
정말 낙동강 개발로 파 뒤집혀진 강가에서 오래된 포도나무를 본 적이 있다. 대체로 포도나무의 20-50년 수명이라지만 이것은 농원에서 수형을 잡아 기른 경우이고 내가 본 포도나무는 족히 백년은 된 것 같았다 이 포도나무가 잘려나간 것을 보면서 나는 경악스러웠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요즘 그곳을 지나가면 옛 것들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잔디밭이 잘 깔려 있다 봄이면 지천인 유채꽃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잘 성형된 모습처럼 나는 날 것의 갈대숲을 버리고 유채꽃으로 뒤덮어 버린 낙동강 길대숲이 그립다 그리고 그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주례동에 살던 노거수가 이리저리 쫒겨다니는 기사 속의 모습을 보면서 슬펐다 차라리 오래된 나무를 저 강변 갈대들 사이에 맨처음 옮겨가서 관리를 했더라면 그리고 강제이식 후 관리를 제대로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모든 것이 그 자리에 놓인 채로 제구실을 하도록 제 역할을 하도록 그냥 그렇게 늙어 가도록 두면 안되는 것이었나 몇 번 본 적은 없지만 한때 웅장하고 우람한 회화나무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애잔하다 부디 힘내어 잘 살아내고 예전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