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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시인 혜월당 Feb 11. 2024

나의 페르소나는 안녕하신가

나의 페르소나는 안녕하신가




페르소나 Persona란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 벗는 가면을 일컫는다 라틴어에서는 성격 personality의 어원이 되고 후에 심리학용어로 사용된다 페르소나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쓰는 가면을 뜻하며 현대인들 사이에는 콘셉트이라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순우리말로는 탈이라는 용어가 가장 적합해 보인다 

K. 융의 관점에서 보면 페르소나는 자신의 열등한 무의식을 외부에 투사하기 위해 쓰는 가면이며 이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도덕 질서 의무 등을 따르는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자기 본성을 감추거나 다스리는 보이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연기하는 모습으로 사용된다 

이는 가정교육 사회교육 등의 경험으로 형성되고 상황이나 처지에 따라서 각각 다른 페르소나를 사용하기도 하며 특정한 집단에서 만들어진 페르소나는 다른 집단으로 옮겨가면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한 예로 탤런트가 어떤 특정 역할에서 특정 페르소나에 얼마나 감정이입이 잘되어 그 역할을 충실히 잘 해내느냐

혹은 마당극 중 전통연희의 형식을 빌어 야외에서 행해지는 탈춤은 부당한 사회구조를 들여와 양반을 조롱하거나 약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필요한 가장 적절하게 페르소나 즉 탈(가면)을 쓰게 되는 것으로 분노나 열망의 에너지를 흥미롭게 표현하기도 한다     

가장 건강한 페르소나는 자기와의 균형이 잘 잡힌 상태를 말한다 한편 시에서 페르소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되는 화자이며 이 시의 화자는 성격이나 성별 등은 시의 통일성에 기여하기도 하고 혹은 객관성 혹은 관점의 적절함이 극대화되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시인은 시의 화자와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보다 강한 전달력을 위해 세계관 가치관 사회적 신문 등을 고려한 시의 내용전달에 가장 적합한 페르소나를 택하기도 한다 단적으로 소월의 시 진달래꽃에서 시의 화자는 시인인 남자 김정식이 아니라 한이 서린 가냘프고 여린 서정성을 지닌 여성화자를 들여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반면 이육사의 광야에서는 단단하고 강인한 남성화자를 불러 시의 당혹함을 높이는 효과를 택한다 이처럼 시의 경우 시인은 현실에서의 삶과 마찬가지로 여러 시에서 여러 페르소나를 등장시키고 그에 적절한 서정을 표현한다 시인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관점에서 쓰는 시를 페르소나를 입힌 시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어떤가 부모 자식 간의 페르소나가 있고 부부간의 페르소나 사회에서의 페르소나 각 단체에 임하는 페르소나 등 현대인은 본인이 원하든 아니든 다양한 페르소나를 꺼내 쓸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기도 한다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페르소나가 다양하지 못한 경우에는 인간관계에서 유연하지 못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다양한 페르소나를 바꿔 쓰며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약삭빠른 사람이라는 등으로 평가되어 신뢰를 잃기 쉽다 뺀질뺀질 닳을 대로 닳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결국 대처하는 페르소나가 유난히 적절하게 잘 사용된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한 번쯤은 내게는 몇 개의 페르소나가 있는지 어떤 곳에서 어떤 페르소나를 꺼내 쓰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작업도 필요하다 자신이 만든 페르소나와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페르소나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는 그 페르소나들을 구분하고 그 페르소나의 역할과 행위를 분석하면서 실제의 자아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반면 상대의 페르소나를 관찰할 필요도 있다 내게 대하는 상대방의 페르소나와 대중을 향해 드러나는 페르소나 그리고 그것들이 갖는 필요성의 향방을 가늠해 보는 가운데 상대의 장단점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처지나 상황에 따라서 얼마나 다른 페르소나를 내어 보이느냐에 따라서 상대의 진정성과 한결같음 한결같지 않음 등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페르소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진정한 자신을 드러낼 시간이 줄어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한 역할들이 늘수록 점점 타인이 요구하는 페르소나가 많아지고 그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페르소나가 아니며 페르소나의 뒷면에 감추어진 진정한 자기 모습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TV 속 자연인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원만한 사회적 삶을 살아가려면 다양한 페르소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때로는 필요한 다른 페르소나를 덧입히더라도 최소한 자신에게만은 늘 당당하고 스스로가 원하는 자기 본모습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자신을 찾고 유지하며 살기를 노력한다 




사진제공 성경화



사진 성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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