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들의 눈빛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 어떤 선택을 하든 대개는 곧바로 그 결과를 알 수 없지만 선택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그 길이 내게 유익하든 아니든 그건 당장 알 수 없기 때문에 결과를 알 때까지는 선택에 대한 갈등과 번민을 반복하면서 나아가는 길 위에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며 앞으로 걸어간다
용케 그 선택이 옳았다면 선택했던 나날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렇지 않다면 고통과 고난을 대가로 받게 된다 이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의 선택에 해당된다 이는 살아 숨 쉬는 것들의 특권이고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속을 살아가기 마련이다
해마다 봄이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나무들이 새순을 내기 시작한다 섣부른 가지치기로 그 해 나무는 새싹을 내지 않고 몇 해를 넘긴 후에야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경우도 겪는다 살아 숨 쉬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기다려 주는 것이 도리이다 특히 어떤 위해를 가한 경우에는 반성하고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이 살아있는 것에 대한 최소한 예의이다
이는 사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수많은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지른다 이가 의도적인지 실수인지는 지난 관계를 돌이켜 보면 알 수 있다 늘 드러나는 행동인지 정말 우연히 자신도 모르게 일어난 행동인지를 통해서 그 의도성을 짐작하게 된다
실수로 위해를 가한 정도라면 그 크기를 보면서 용서가 가늠할 수는 있지만 실수도 실력이니 만큼 잣다면 그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용서를 구할 수는 없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살아있는 것들을 대할 때에는 늘 조심하고 염려하고 배려하면서 대해야 한다 설사 그게 사람살이에 별 이해관계가 없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대부분의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자기의 세계 안에 갇혀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눈길이 닿지 않으면 시들어 버린다고 착각한다 항상 그 시작과 끝은 자기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면 자기 이야기와 자신의 경우를 들고 들어온다 남에게는 관심도 없고 셀카를 찍어 남들에게 보여주기 바쁘며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는 관심도 없고 분위기 파악도 잘 안 되고 남들이 이야기 하는 중간에 끊는데는 명수이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하는 일들을 보면 대개는 전혀 장사가 되지 않을 것 같은 곳에 멋진 펜션을 지어놓고 혹은 멋진 세차장이나 카페를 만들어 놓고는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고 착각한다 주변의 분위기는 누가 봐도 쉬고 갈만한 장소나 사람들이 찾을 만한 풍경이 아닌데 혹은 전혀 사람의 발길이 없는데 뜬금없이 지어 놓고는 사람들이 찾지 않고 문을 닫고 있는 안타까운 경우를 종종 본다
마찬가지로 매사에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판단이나 자기 가치관 자신의 시야가 늘 세상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타인을 바라보는 눈이나 상대에 대한 가치를 알아보는 기준도 자신의 눈높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누구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자기에게 유익하지 않고 자기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는 존재라면 혹은 더 나아가 경제적인 이득이 없는 경우라면 가차 없이 무시하고 멀리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나 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아니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중요한 것은 세상살이가 홀로 사는 것이 아니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느 단체든 속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 숨 쉬는 것이라면 이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 어느 단체든 일원을 평가할 때에는 기여도를 생각한다 단체가 원만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일들이 있고 그에 대한 충성도로 대개는 평가한다
공동체 생활은 이기적인 유기체와 이타적인 유기체들이 얽혀서 이루어진다 R. 도킨슨은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협동하며 이기심을 버리고 공동의 선을 향해 나가는 사회는 모두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회이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서 본다면 전혀 불가능한 꿈이라고 한다 관용과 이기심은 학습에서 비롯되면 인간은 생래적으로 이기적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H.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정부의 통제가 없으면 근시안적인 이기심으로 서로를 파멸하는 것이 인간이라고도 했다 인간의 이기심은 G. 하딘의 글 <공유지의 비극>에서도 찾을 수 있다 농부가 키우는 소의 숫자를 제한하지 않으면 농부들은 소의 숫자를 계속 늘이게 되고 공유지 즉 공동의 자원을 훼손하거나 남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모두를 위한 해가 된다
세상살이에서 실체가 없는 허황된 말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고 애를 쓰는 경우도 종종 본다 말로만 하는 기여는 기여가 아니라 사실 관계를 흐리는 현혹이고 미혹이다 인간은 이기적으로 살아남기보다는 협력하고 힘을 모아 올바른 일을 위해 공정하게 행할 때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고 관용과 친절을 예의 바르게 베풀 때 좀 더 오래 좀 더 유익하게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학창 시절 언제나 출석해 있는 학생에게 결석하지 마라 하고 나쁜 짓하고 결석한 학생들이 듣지 못하는 자리에서 나쁜 짓하지 말라고 하는 선생님의 훈화를 기억한다 오죽하면 선생으로서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지는 나이가 들면서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 선생 역시도 자기 본분이나 감정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었을까 좀 더 넓게 바라본다면 사실관계를 따져서 말을 하지 않았을까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협동하고 협력하며 함께 가는 길이 훨씬 더 멀리 오래갈 수 있고 세상살이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려고도 실행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 자랑에 혈안이 되어 있고 기회만 되면 자랑질을 한다 타인의 험담도 유유자적하게 말한다 이런 류의 사람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면 아마도 먹은 것이 소화가 안되거나 토할 것 같은 경험도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이도 든 만큼 들어서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돈 사람들이 대체 이 좁은 세상 안에서 자랑할 게 뭐가 그리 있는지 연구대상들이다
당자가 앞에 있건 말건 개의치 않고 당사자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그대로 말하는 세 살 없는 식견을 내보이는 것도 본인은 사실을 말하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식이다 또한 자기 사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도 입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상대에게는 귀만 있는 줄 안다 만약에 이런 사람이 돈이 좀 있다면 더 가관이다 끝도 없이 돈자랑 자식자랑 손톱만한 자기명예를 자랑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지경이다
누가 내게 유익하지 않은 자랑질을 끝없이 들어줄까 이들은 남의 사소한 인사치레의 칭찬을 먹고 자라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는 칭찬에 인색한 것이 답이다 어떤 칭찬도 하지 않고 관심을 갖지 않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이 정답이다 만약 마음 약한 사람이 어거지로 약간의 칭찬을 한다면 그 칭찬을 먹고 자기중심적 거만병을 더욱 빠른 속도로 자라기 때문이다
어느 단체든 전체 인원의 30%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로 20%는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들로 50%는 예측가능한 무난한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무난한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의 눈에는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기 일쑤이다 이러나저러나 무난 무난하기를 바라며 좋은 게 좋다며 그냥 넘어가기 때문이다
식물을 키워봐도 대체로 이 비율로 자라는 것 같다 유능한 식집사들도 100%의 생존율을 가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가꾸는 식물의 절반은 별다른 마음을 쓰지 않아도 잘 자란다 하지만 그 절반은 잘 자라기도 하고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하고 들쑥 날쑥이다
주변의 인간관계를 둘러봐도 그렇다 열에 다섯은 대체로 무난한 사람이라면 두 명 정도는 좋은 행동 싫은 행동을 번갈아 하며 사람을 쥐락펴락한다 친구 관계의 기준에서 들락날락거리는 편이며 좋고 나쁜 관계가 변화무쌍하다면 셋 정도는 계륵처럼 버리지도 가까이하지도 못하는 관계가 있다
<그렇구나 그렇거니 그에 해당되는구나> 하면서 포기할 관계는 포기하고 지속할 관계는 관계를 지속한다면 관계에 대한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100%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다면서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다 품고 끌어들이는 사람을 보기도 한다 잘난 척에 어이없다 치마폭이 넓어서 이 사람 저 시람 다 포용할 수 있는 대인배들이야 이 넓은 세상에 한둘쯤은 있기 마련이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눈빛은 다르다 맑지 못하고 흔들리며 산만한 듯 사방을 살피면서 머릿속으로는 손익 계산을 하느라고 바쁘다 관계의 폭은 넓을 수 있지만 그건 본인만의 생각일 경우가 많다 이들은 마음의 깊이가 없고 자동반사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에 급급하고 자기 잘난 맛에 끊임없이 셀카를 찍어댄다
마음의 깊이가 깊으면 관계의 폭이 좁은 것은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마음의 폭이 넓고 깊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 어렵다 언뜻 보면 어리석어 보이지만 내면이 꽉 찬 깊은 눈빛을 한 사람이 간혹 있다 이들을 한 두 번 만으로 보고 그 깊이를 가능하기 힘들다
떠벌리는 인간보다는 침묵하는 자들을 더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알고 보면 속내 깊은 진짜 고수일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설사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입을 닿고 듣기만 하는 사람은 최소한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단체에 가면 조용히 듣고 있는 사람을 더 눈여겨보게 된다 이들은 들리는 것만으로 혹은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마음의 울림으로 사람살이를 느긋이 바라보고 사람이 아닌 것 같으면 거르는 지혜를 지녔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깊은 눈빛을 지녔다 그 눈빛을 찾아내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생의 고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