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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나는 홈캉스 중입니다

by 김지숙 작가의 집

올 여름, 나는 홈캉스 중입니다



홈캉스란 집에서 보내는 바캉스를 의미한다 home + vacance를 적절하게 조합하여 내가 만들어 본 말이다 대부분의 바캉스는 일상에서 멀리 떠나는 의미를 지니며 주로 깨끗한 바닷가나 물가를 찾아 휴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칩거>나 <하안거> 같은 살짝 다른 의미를 지니지만 일견 이들에 유사한 면도 없지 않다

요즘은 이도 저도 귀찮고 바캉스는 가야 하고 하니 시설이 완비된 호텔에서 룸서비스를 받으며 보내기도 하는 데 이를 호캉스라고 한다 원하는 음식이나 물건을 집까지 배달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사는 집에서 룸서비스는 아니더라도 홈서비스를 받고 자잘한 일도 쉬면 완벽하게 휴식할 수 있다면 홈캉스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살면서 올여름처럼 체감온도를 높게 느껴본 적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가 들면 더 높게 느낀다고 하는데 누구나 살아있는 존재라면 날이 갈수록 나이는 들기 마련이고 오늘 나이가 살아가는 중 가장 젊으니 당연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더위와 추위에 취약하다는 그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이런 무더위를 피해 주변에서는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간다거나 몇성급 오션뷰 호텔에서 호캉스를 한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살던 집을 떠나서 해외로 휴가를 자주 나가는 것일까 둘러보면 해외로 나가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어쩌면 어지간히 살만큼 사는 몇몇 사람들은 이미 해외여행이 습관화되어 있고 집 어디에는 여행가방이 상시로 꾸려져 있다

거기 다녀와서 무슨 특별한 경험을 했다거나 특별한 일에 관한 얘기를 하거나 식구가 살고 있다거나 볼 일이 있어 간 사람들도 있고 남들이 갔다 왔다고 하니 기어이 나도 다녀와야 하고 어디가 좋다고 하니 <나라고 못갈소냐>라며 못 갈 이유가 없다는 이유를 들이대며 가는 여행자들도 있다

솔직히 여행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남들이 어디를 다녀왔다고 자랑을 늘어놓아도 나는 별 다른 느낌이 없다 그래서 가서 어땠는지 저랬는지 세세하게 묻지 않고 더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수많은 여행자들이 내놓은 방대한 이야기나 자료들은 SNS에 늘 늘려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는 거시서 거기이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어땠는지 무심코 인사치레로 물어보면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그 이야기는 정말 끝이 없다 어디서 말을 끊어야 할지 침묵으로 기다리고 있는 데도 상대는 자랑이 늘어져서 상대의 무반응에는 무관심하다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처음 유일하게 그곳을 발견하고 다녀온 사람처럼 떠벌이기도 한다

좋은 세상에 살아서인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지구상 어느 나라도 볼 수 있고 아프리카 밀림 속의 종족까지도 우리를 대신 찾아 나선 여행자들은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고 전달하고 그들이 맞닥뜨린 자연환경도 어렵잖게 느끼게 된 그 나라음식이며 문화 사고방식 가치관 옷 입는 것까지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장단점은 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 드론을 띄워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과 화면을 통해 흘러나오는 사람사는 모습들은 실제와는 정말 많이 다르다 수영하는 모습을 아무리 많이 본다고 해도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수영을 배울 수 없는 점과 마찬가지 원리이다

하지만 사는 일이나 여행으로 얻는 체험은 지식으로 배우고 머리로 느끼는 간접체험과 달리 실제 이런 몸으로 익히는 것이라 기술 습득과는 좀 다른 면이 있다 여행자들이 자신이 다니고 느낀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경험을 그 나라 전체의 문화로 착각하는 편견을 가질 수 있고 굳이 몸으로 느끼지 않아도 알게 되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여행체험이란 주체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서 가감되므로 직접체험과 간접체험은 조금씩은 다르게 와 닿을 수 있다 하지만 살면서 지구상 모든 곳을 몸으로 다 체험하여 알아가기에는 인생의 시간대는 유한하고 굳이 모든 것을 다 겪을 필요와 가치는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다만 꼭 한번은 가보고 싶다는 소망이 담긴 짧은 버킷 리스트를 실천한다면 할말은 없다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은 질병을 실어 나르는 것이다 아프리카를 다녀와서 향토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을 만난 후 해외여행자들이 내게 만나자고 말하면 한 두달 정도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만난다 혹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감염된 어떤 바이러스가 옮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나라의 검역소를 다 믿지 못하는 바도 적잖이 있지만 공항이며 비행기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노출되는 것은 어찌다 알 수 있을까 전용비행기 정도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매사에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한 경우를 제하고는 코로나이후로는 이 원칙을 대체로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예전 같으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단하다 여기거나 그럴만한 부와 용기를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꼭 가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공항은 늘 만원이다 어떤 이유로든 벼락부자가 되어 쌓아 둔 돈이 곰팡이가 슬까 염려되어 간다는 사람도 있고 한끼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으니 노후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으니 같은 땅덩이 안에서 일어나는 빈익빈 부익부의 세상을 절실히 느낀다 그러다보니 별생각 없이 돈을 물 쓰 듯 쓰는 사람들도 만나고 소일거리로 여행하는 사람들도 더러 만나지만 별다른 생각없이 그러려니 한다

아무런 용무없이 그저 재미로 점식 식사로 일본라면을 먹으러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듣기도 한다 그래도 그렇지 남의 나라를 내 집 드나들듯이 들락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에너지를 왜 그렇게 쓰는지 고개를 갸웃대면서 서로 참 다른 가치관을 지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집 밖을 나서는 일을 여러모로 즐기지는 않아서인지 다 가보지 못했지만 우리나라 절경도 곳곳에 있다 비행기를 타고 먼 길을 떠나 남의 나라를 다니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도 늘 생각하게 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만큼 여행자들을 상대하여 여행관련업자들도 밥먹고 살아가는 세상이니 절대적인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 생각이나 판단은 결코 적절하지는 않다

남이 하는 바캉스나 호캉스에 대해 왈가와부할 바는 아니고 다만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살면 그뿐이다 예전 같이 하얀 모시적삼을 입고 원두막에서 둘러앉아서 수박을 먹으며 부채질을 하며 한여름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난들 누가 뭐랄까만은 이는 오래된 소설 속의 한 장면으로 만날 뿐이고 부모님 시대의 여름에서나 듣게 되는 그야말로 오래된 전설에 버금가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지금은 다시 볼 수 없는 그 시절의 여름 풍경일 뿐이다 요즘 같은 한여름 시골에 가면 한낮 불볕 원두막에는 고양이 한 마리도 없다 마을이 텅 비어 있고 간혹 있다 손 치더라도 대부분의 나이 든 어른들은 집안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고 있다

무더위에 일하지 마라고 방송을 수없이 내보내는 세상이니 참 많이 달라졌다 일도 할 수 없고 나다니기도 힘든 여름 땡볕은 그냥 사람들을 에어컨 앞에 잡아두고 있다 그렇다고 홈캉스가 마냥 나쁜 것도 다 좋은 것도 아니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떨치고 나서는 것도 좋다 그냥 생각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면 그뿐이다

땡볕 아래서에 여기저기 바캉스를 하면서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사람들과 환담을 하며 즐기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다면 그보다 더한 상황도 즐겁게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여름이 덥다한들 젊은 열기를 이길 수는 없다

대학시절 동아리행사에 합류하여 텐트 속에 자면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울릉도를 걸어서 한바퀴 돈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지만 그 때는 무슨 용기로 그 힘든 고행을 했는지 스스로도 궁금하다 그해 여름은 그다지 더운 줄도 힘든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 젊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그 시절을 보내 보고나니 알 것 같다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삼복지간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라는 속담이 있다 날이 더우니 제 한 몸 다스리기도 힘든데 손님이 오는 것은 부담되고 삼복기간 중에는 밥먹는 일도 그 어떤 일도 하기가 쉽지 않고 귀찮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선뜻 어디로 나가기도 꺼려진다

도심에서는 여름 나기가 더 힘들다 물론 상점이나 차 안에는 에어컨이 틀어져 있다 손치더라도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매연이 뒤범벅된 더운 공기가 온몸에 안겨드는 덥덥함에는 답이 없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길을 무방비 상태로 5분 이상 걷는다면 그냥 내 영혼이 이탈할 것 같아 정신줄 붙잡고 걷는 일에만 그저 열중할 뿐이다 어서 빨리 바닥의 열기를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기도 한다 간혹 새로 만든 버스 정류장에 에어컨이 들어온다 그곳은 동네 꼬마들이 만나서 노는 놀이터를 대신하기도 한다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

이렇게 더운 여름에는 누구를 만나는 일도 누구의 집을 방문하는 것도 스스로 삼가게 된다 그냥 집콕이나 홈캉스가 제격이다 나다니는 데 드는 비용으로 집에서 호사를 누리는 것도 나름 유익하다 하루 빨리 이 무더위가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평소 게을리했던 집안 곳곳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하나둘씩 점검하기도 한다

그도 저도 귀찮다면 그냥 책 TV SNS 핸드폰 등으로 집 안에 도서관의 책을 e-BOOK으로 빌려 읽고 쇼핑몰에서 새벽배송되는 생필품을 사고 TV로 남극 북극으로 산으로 바다로 여행 떠나고 화면 속에서 골프도 치고 스킨스쿠브를 즐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활하면 그뿐이다

굳에 세상 모든 곳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다녀오고 살 기에는 세상이 너무 넓다 그렇다고 모든 생이 간접 험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에게 맞는 삶처럼 자신에게 꼭 맞는 바캉스를 즐기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굳이 남이 <장에 간다고 거름 지고 장에 가>는 식으로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다니고 싶지는 않다

내게 맞는 피서법을 택해서 그냥 살기로 했다 바캉스든 강캉스든 산캉스든 호캉스든 홈캉스든 가장 유익한 휴식이 된다면 장소불문하고 다 괜찮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여름, 그 마음으로 홈캉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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