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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by 김지숙 작가의 집

운수 좋은 날


오래 전의 일이다

가야학 아카데미 개강일이라 김해로 차를 몬다. 왠지 가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들긴 하다. 감기몸살 뒤인지 온몸이 뻐근해서일까. 그냥 집에 쉬다가 저녁 수업 갈까? 망설이다가 개강일에 가야 책자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곧장 박물관으로 달린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이라 그런지 앉을자리가 없었다. 책만 받고 나오자니 먼 길 달려온 보람이 없다싶어 한참을 화상 강의를 듣다 김수로왕릉이나 돌아보고 가자는 생각에 그곳으로 차를 돌린다.

그런데 오늘은 회현 장날인지 도로가에 촌노들이 채소, 과일, 도자기 등을 판다. 나의 발길을 그곳에 멈추었다. 과일, 야채들이야 부산의 대형마트에 비할 바 없이 초라했지만 나의 눈길을 잡은 것은 도자기다. 나는 작은 그림들이 아기자기 그려진 도자기들을 서행하며 바라본다. 마음을 도자기에 빼앗긴 채 멈칫멈칫 달리며, 차 세울 곳을 찾다가 달리 세울 곳이 없어 이면 도로에 적당히 차를 두고 그곳으로 향했다. 정말 나답지 않은 행동이다.

한참을 그곳에서 이것저것 고르고 살 것을 챙기는 데, 도자기 파는 총각이 “이것은 안 되겠네요. 내 나이 이제 한창인데, 남 속여서 물건 팔고 싶지 않습니다.” 하면서 금이 간 도자기를 골라낸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오늘은 도자기도 싸게 사고 제대로 된 사람도 만나는구나 싶어 괜히 기분이 좋았다.

난전이지만 이 사람의 양심은 사람을 참 기분 좋게 만든다. “가끔씩 꼭 들르겠으니 좋은 도자기 많이 갖다 놓으세요.”라고 룰루랄라 기분이 좋아 흥얼거리며, 주차한 곳으로 온다. 그런데 주차단속요원이 방금 내차에 주차위반 스티커를 끊고 난 뒤였다. 거의 1분 차이였다. 내가 좀 더 신속하게만 움직였어도 쓸데없이 이것저것 가격만 물어보지 않았어도 주차위반 딱지는 비껴갔을 텐데. “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요.”단속요원의 말이다.

난 사실 16년 이상을 운전하면서 주차위반 스티커를 한 번도 끊겨본 적이 없다. 가장 아까운 돈이 병원비, 주차비, 주차범칙금이라 생각하기에 항상 주차질서를 지키는 편이다.

김해시는 회현에 5일장을 유치해놓고 견인차, 주차위반 요원을 그럴싸하게 가동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 돌아서니 바로 내차 앞의 차들이 줄줄이 견인되어 간다. 김해시는 부자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손발이 척척 맞다고나 할까? 견인차, 주치 위반 요원, 김해시의 정책이 환상의 부루스를 보는 느낌이다. 그들의 몸짓이 날렵하고 가볍다. 부산은 낙동로 가드레일에 카메라만 내놓고 함정 단속하는데, 김해는 함정 거리를 만들었다. '이 구간만 특별히 단속하라는 명령이 시달되었다.'나 똑같은 조건인데 옆 도로는 명령이 없어서 시행 안 한다나. 긴말이 필요 없는 상황이다.

세상에 큰소리 칠 일이 별로 없다. 자중 자애하자. 그래도 집으로 돌아와 도자기를 꺼내 보니 그래도 기분은 무지 좋다. 어떻게 식구들에게 이 상황을 말할까 이런저런 고민하다가 난 정공법을 택하기로 결정한다.

틈이 나면 제대로 된 곳에 주차하고 친한 친구와 시간 내서 그곳에 또 가고 싶다. 가서 기분 좋은 주인에게 잘 생긴 도자기를 사서 기분 좋게 음식을 담아내고 싶다.


오늘은 참으로 운수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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