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갈비를 먹으며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어서와 봄날』



고갈비를 먹으며




지금은 한산하기만 한

미화당 백화점 뒷골목을 찾았다

추억은 언제 만났냐는 듯 입다물고 있다


내가 아는데 그리고 네가 아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아무 기억도 없는 척

눈도 맞추지 않는다


그래도 이 길을 걸으면

입영의 전 날 못다 마신

담벼락에 꽂힌 소줏병들이

빛나는 말을 걸어 온다


추억이 또 다른 추억을 덮을 동안

기억은 또 다른 기억을 덮어 왔다



부산에서 태어나서 자라다보니 고갈비라는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돈다 정동진의 썬크루즈 호텔 레스토랑에 가면 고등어 구이 된장정식이 메뉴로 나온다 뷰가 좋은 호텔이라 그런지 가격대가 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등어를 먹으면서 대학시절 미화당 백화점 뒷골목 고갈비를 떠올렸다

남포동 미화당 백화점 뒷골목에 자리잡은 고갈비 골목을 가본지는 삼십년도 훌쩍 넘었다 솔직히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맛이리라 그 때만 해도 연탄불에 올려 굽는 고등어 냄새가 골목안을 꽉 채웠다 길거리에서 둥근 드럼통이나 한 때 신주를 감았던 나무통을 테이블로 사용해도 사람들은 앉을자리가 없어 늘 북적거렸다 의자랄 것도 나무로 뚝딱뚝딱 얼기설기 대충 만든 느낌이 났다.

주로 고갈비 골목의 첫집을 선호했다 첫집 할머니의 호객행위를 뚫고 끝집까지 갈 용기가 없었거나 멀리서부터 풍겨오는 고갈비 냄새를 어서 빨리 먹고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연탄불에 지글지글 잘 굽혀 나온 고등어살을 한 젓가락 가져와서 입에 넣으면 그 뜨거운 맛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고소하고 참 맛있었다 요즈음 말로 하면 '겉바속촉'이다 겉은 바싹하고 속은 촉촉한 맛

지금도 가끔 고등어구이를 이곳저곳에서 먹긴 한다 하지만 그 때 그 맛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추억 속의 음식은 언제나 추억과 함께 기억난다 누구와 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별다른 의미없는 대화들을 심각하게 또 열심히 떠들었던 청춘의 한 장면들이었다


추억의 맛은 언제나 쉽게 정복되지 않는다 더 좋고 더 맛있는 상황이 와야 덮을 수 있다. 고갈비의 추억, 함께 했던 좋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희뿌옇게 흐려져 가지만 연탄불에 갓구워낸 고갈비맛은 여전히 혀끝이 기억한다

아직도 남포동 고갈비 골목에 가면 고갈비를 파는 집이 두세집 남아 있다고 한다

과연 옛날의 그 맛이 날지 궁금하다 그래도 한번 쯤은 추억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부산 중구 광복중앙로 1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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