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어서와 봄날』
장어
끓는 물에 된장 풀어 국을 끓이고
불판 위에 갖은 양념 채소 함께 굽고
짚불에 통으로 구워 매끈둥 껍질 벗겨 바로 먹고
생껍질에 붉은 고추 마늘 더해 묵도 만들고
껍질로 비싼 가죽 대신한 가방 만들고
전쟁 통 피란민들 배고픔을 가시게 한 곰장어
맑은 개천가 허름한 농막 성업하던 장어 전문 식당
디글디글 퉁퉁한 구운 장어 몸통에
가지런히 실파 고명 얹은 고소한 장어맛 혀 끝에 맴돈다
지금의 현대식 자갈치 시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바닷가에 포장마차가 즐비해 있었다 그곳에는 곰장어구이가 일품이라 자갈치나 남포동에 볼일이 있는 날이면 굳이 들러 곰장어를 먹었다
물론 혼자서는 호객 행위를 떨치고 지나갈 용기가 없고 엄두도 못내어 친구 둘셋이 모여 가곤 했다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입맛을 당기는 고추장과 곰장어의 조합이 만들어낸 특별한 양념맛과 불맛에 끌려 특별하지 않는 날에도 무리지어 찾았다 양념이야 포장마차 어느 집에 들어가도 맛은 거의 다 비슷했다 다만 여주인의 입담이 선택의 여지를 주곤 했다
지금은 도로 반대편으로 나와서 가게를 차려 놓은 몇몇 집만 여전히 남아 곰장어 외에도 이런저런 음식들을 팔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호객행위를 한다
포장마차가 사라지고는 가게로 곰장어구이를 먹으러 가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자갈치 시장에 가면 포장마차 안에서 먹던 벌건 양념으로 구워 먹던 장어가 이따금씩 생각난다 가끔 마트에서 손질된 장어를 사다가 양념을 해서 먹기도 한다 가스불에 굽는 맛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 하지만 추억이 덤으로 얹은 장어구이를 먹으며 추억을 생각하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이런 따뜻한 추억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되새겨도 따뜻하다
그래서 그 따뜻함의 기억으로 오랜 세월을 견뎌내기도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