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골 지나는 길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어서와 봄날』



사과나무골 지나는 길



그 길이 좋았다

사과가 나뭇잎보다 더 늘어지던

그해는

삼촌의 환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학무리 강을 날고 무릎깨던 물살들

볼우물 팬 채 굴러다니던 사과알들

뙤약아래 삽짝문 열리던 그 길에는

여름처럼 뜨거운 얼굴들이 고개들고 있다


기차소리 머물던 간이역

즐거운 기억 안겨주고는

우리들 뒷모습에 얼굴 돌리던 삼촌은

시골역 낡은 창 밖

깊이 뿌리박고 사는 물미나리처럼 흔들렸다



이 시를 쓸 즈음 나는 가을의 낙동강을 가장 가까이서 맞고 싶어 양산 화제리를 거쳐 영남 알프스 얼음골 일대를 자주 드라이브하곤 했다 그 때 지나는 길에 얼음골 사과가 열린 모습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한 때를 떠올렸다

시 속의 배경은 초등학교 방학을 맞아 온 가족이 부산에서 꽤 먼 형산강 일대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시던 삼촌집을 간 적이 있었고 그 날들을 떠올렸으며 그 때를 배경으로 쓴 시이다

삼촌은 내가 시인이 된 것을 가장 크게 기뻐 한 사람이다 나의 첫시집을 받아들고는 나를 바라보며 환한 웃을 짓고 무척 자랑스러워 하셨다 사실 나는 자라면서 삼촌이 아이들의 일을 두고 그렇게까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다 자란 어른에게 새삼 칭찬에 거듭 칭찬을 하시는 모습에서 '삼촌도 시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내 몸 속에 흐르는 시를 사랑하는 피는 아버지의 피 삼촌의 피와 같은 색깔이라는 것을 그 때 느꼈다

그 시절 삼촌은 공직생활을 한터라 직장 따라 전국을 옮겨 다녔는데, 그 곳은 숙모의 외가가 가까운 곳이라 꽤 오래 정착한 것 같았다 너무 어려 세세한 내용은 잘 모르고 뒤에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 당시 내가 안 것은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사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색깔은 누르스럼하면서도 연한 초록빛을 띠었는데, 삼촌은 한개를 선뜻 따주면서


'머리만 하지. 보기는 좋아도 맛은 없어'

하면서 환하게 웃곤 했다


'이건 바나나맛 사과다'

맛있다면서 노란 사과를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그 해는 사과나무가 유독 사과를 많이 달았다고 했고


'귀한 조카가 멀리서 사과 보러 온다고 그랬나보다'

면서 허드레소리를 하곤 하셨다


커다란 푸른 쇠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넓은 사과밭이 있고 대문 오른편에는 나무로 지은 대형 창고가 있었다 정말 컸다 거기서 선별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게 사과 과수원은 신세계였다 커다란 대문을 열자 눈앞에 나타난 사과 과수원. 사과 품종만해도 스무가지는 넘었던 것 같다

삼촌의 품성이라면 그럴 만했다 한 가지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품종에 도전했을거라는 짐작이다

과수원 옆으로는 높은 제방이 있고 바로 제방아래 형산강 지류가 흘렀다 과수원 주변의 흙은 맑은 모래가 지천이었다

너무 오래되어 상세하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나는 그 때부터 사과 과수원에 대한 꿈을 자주 꾸었는지 모른다 붉고 예쁜 사과 홍옥이 달린 사과나무 사이를 걸어다니기도 하고 땅에 커다란 사과들이 떨어져 있기도 했다

요즈음도 만약 내가 시골에 산다면 나는 집앞에 사과과수원을 두고 싶다 내가 잘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나는 삼촌의 그 과수원처럼 강이 흐르고 강변 모래밭에 학무리들이 나는 그 넓고 풍성한 다양한 모양과 크기를 가진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린 과수원을 꿈꾼다

내 귀촌의 꿈을 말하면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 꿈은 꿈일뿐 무리다 그냥 과수원하는 친구를 두라고들 말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과수원하는 친구를 만들어 수확기에 가서 돕고 사과가 달린 모습을 눈에 마음껏 넣어두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그러고 싶지는 않다 사과나무는 약을 자주 친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태평농법으로 약을 치지 않은 사과나무에 사과가 달린 꿈을 꾸고 상상 한다


바다나 강물 혹은호수가 바라보이는 언덕배기에 앉은 이 곳 숲의 꽃사과처럼 빨갛고 예쁜 열매가 초롱초롱 열린 사과나무 과수원을 꿈꾼다


얼음골 주변 : 경남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로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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