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어서와 봄날』
와룡매
첫봄이 오기 전에 너를 만났다.
숨도 고르지 않고 달려가 네 곁에 가만히 누었다 풍덩, 나는 깊고도 달콤한 연분홍 하늘로 빠져든다. 낮춘 마음 매화 끝자락에서 태양은 찬란한 황금빛 의관을 차려입는다
비로소 매화 정원에 빛이 든다. 우주는 수축팽창을 반복하고 행성과 항성이 서로를 끝없이 밀어내자
유성우는 꽃비늘을 쏟는다. COSMOS는 성간을 이동하고 온몸에 불을 지핀다. 초신성의 몸으로 우주를 떠돌던 武夷山 선옹이 지구 첫 생명체로 낙점한 와룡매
지금도 여전히 겨울의 끝자락 봄의 처음 초봄이 좋다 매화가 꽃을 맺기 때문이다 한 때는 해마다 김해 건설공고 정문길에 누운 매화를 보러 갔다. 근 십 년을 이 매화를 보러 가는 길을 봄날 답청 보다 먼저 해 왔다
이 시는 처음 와룡매를 본 날 쓴 것이고 가장 최근인 5년 전쯤에 갔을 때에는 이미 예전의 와룡매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베어지고 부러지고 너무 나이가 들어서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음이 아팠다.
어쩌겠는가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다시 이 모습을 보고 또 슬프고 싶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발길을 자제했다
첫사랑은 나이가 들어서 만나지 말라는 말이 이 말인 것 같기도 했다.
대학시절 건너 건너로 알던 사람을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되었다 30년도 훌쩍 더 넘기고 보니 난 처음부터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고 한참의 통성명과 대화 후에 잠깐 같은 서클 일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먼발치에서 늘 나를 보아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내게 말하기를 과거의 내가 지닌 이미지를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었다.
물론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나는 방부제를 먹고 산 것이 아니었는데 그걸 기대했나 보다 생각하면서 첫말에 조금 섭섭했다 내 딴에는 열심히 잘 살아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난 속엣말을 사리는 사람, 속 깊은 사람이 좋다 그래서 상처를 지닌 사람 그 상처를 승화한 사람이 좋다 상처가 크면 클수록 그 상처가 지닌 의미가 강할수록 그것에서 강한 내공을 느낀다
평생을 부모의 도움으로 순탄 대로 항해 한 온실 속 화초보다 더 잘 자란 온실 속 열대식물 같은 사람을 결코 좋아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굳이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도 한때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그저 그렇거니 한다 다만 대화는 잘 안 할 뿐이다
와룡매를 보면 줄기 군데군데 상처투성이다 제대로 자라 보지도 못하고 키대로 누웠다. 어느 사진작가가 누워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길래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었다 한참을 꽃봉오리 위를 지나가는 햇빛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나도 그 옆에서 그 모습 봐도 되냐고 하니 그러라고 했다 마침 텐트 돗자리를 넓게 펼친 터이고 너도 나도 사진 찍느라 여기저기 누운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신기했다 나도 좀 떨어져 누워 와룡매를 봤다. 다들 누운 채 꽃을 찍는 사진작가들이 많아 이 광경은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눈높이대로 봐야 와룡매가 살아온 인생의 그 참맛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