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채련곡水墨採戀曲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어서와 봄날』




수묵채련곡水墨採戀曲




지난밤

꿈속을 다녀가신 그대,

일점혈육 두지 못하고

정갈한 삶 살다 가신 그대,


두고 간 연잎 수묵화, 시 한수 받아 드니

그대 서러움, 한숨 소리 온통 그 속에 묻어있다.

끝내지 못한 사랑이라

부르지 못한 사랑이라 더 서러웠을까

가는 빗줄기 연잎을 울리고


연잎 치는 바람은 벽이었다

연잎들이 일어서서 눈물 흘린다.

연잎들이 일어서서 내가 되었다.

연잎들이 일어서서 그대가 된다.






한 때, 허난설헌의< 채련곡>에 빠졌던 적이 있다



가을에 맑은 호수는 푸른 옥처럼 흘러가고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 매어 두고

사랑하는 그대를 만나 물건너로 연밥을 던지다

행여나 누가 봤을까 반나절 부끄러웠네-난설헌



그녀의 시에서 그대는 실존하는 인물이었을 수도 혹은 상상 속의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일지 혹은 홀로 연모하던 사람 혹은 진짜로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을 만났는지 모른다 이 시를 쓸 때의 난설헌의 그 마음이 와닿아 머리를 퉁 쳤다.

한참 오래된 일이다 시를 쓴 것도 꿈을 꾼 것도

한동안 난설헌의 삶에 애통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꿈속에서 난설헌을 만났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눈동자가 맑고 단아한 자태로 약간은 슬픈 모습. 단박에 그녀가 난설헌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니 내 머릿속에 그려낸 완벽한 그녀의 모습일 수 있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녀가 내게 건네는 시 한수를 되새기며 <수묵채련곡>이라는 시를 쓰게 되었다 나의 시에서 그대는 초희

이 시를 읽으면 다시 그녀의 생에 빠져든다 여전히 마음이 아프고 그녀의 시들은 아름답다

그 마음이 닿아서인지인지 부산에서 멀고 먼 강릉까지 왔다 와서 제일 먼저 간 곳이 난설헌 생가터이다 서민의 삶을 생각하고 시대의 아웃사이드로 멸문지화를 당했던 허균 허초희 오누이의 생가터 주변에는 초당두부를 팔았다 커피 골목이 형성된 후손을 잘 길러 낸 인사이드 인물 신사임당 생가터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가 보면 누구나 잘 안다

난 그녀가 즐기던 연밭을 좋아한다 하지만 작은 배를 타고 연밭을 건너는 행운은 누리지 못했다 연꽃이 피어 있는 광경을 찾을 때면 가끔은 그 연밭 사이로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있는 허초희를 생각한다 그때만큼은 그녀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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