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어서와 봄날』




따뜻한 밥



세상에 같은 밥도 없고

같은 밥값도 없다

입이 다르고 밥이 다르니 밥값도 다르다.


밥값 한다는 말은

손으로 어깨로 머리로 제 몸뚱이 중에서

가장 값이 많이 나가는 곳에서

볍씨를 기른다는 말이다


제 혼을 판돈으로 밥을 사긴 어렵다

제 몸값으로 남에게 밥을 사기도 어렵다


그래도 나는 오늘

네게 따뜻한 밥 한 그릇 사고 싶다



이 시는 '밥'이라는 연작 시 중의 하나이다

밥을 생각하며 산 적은 아마도 이 시들을 소재로 삼은 전후에는 없었던 것 같다 비교적 편안하게 아무 일없이 다른 사람들의 뒷바라지만 했다 하지만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나름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즈음은 지금 나이를 반으로 잘라야 할 즈음인가

그래도 대학 졸업 후 계속 공부해 온 사람들보다 꼭 10년 늦었고 그 사실들로 나는 언제나 그 세상에서는 뒤통수를 맞았고 안주꺼리가 되곤했다 지금 생각하면 파릇하고 한창인 나이이고 뭐가 늦었던 것일까 그 텃세에 나는 가끔 꿈속에서도 진저리를 친다

공부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 싶었지만 그 세계는 달랐다 기득권이 유난히 강하고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낫거니 조금만 달라도 집중 공격한다 마치 어른 세계의 학폭처럼. 그 세계에도 왕따는 붉은 얼굴로 존재했다 언제든 10년 공부가 나무아미타불이 될 수 있고 그런 일들은 늘 있었다

처음으로 밥벌이를 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제 손으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 다만 내가 가진 것 중에서 밥값이 나갈 만한 것을 중심으로 힘을 기르는 일을 하면서 얻은 것이기에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그때 처음 번 돈으로 누구에겐가 밥을 산 적이 있었다 내가 번 돈으로 밥을 사도 상대는 그것에 전혀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많은 감정들로 혼란스러웠다 힘들게 번 돈으로 상대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사 주고 고마웠다 덕분에 이만큼 왔다는 말을 하고 싶었고 그것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따뜻한 밥이 아니라 가장 값이 많이 나가는 비싼 밥을 원한다 그리고 내가 한 일은 그에게 정말 의미 없고 무가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무한한 갑질과 함께 곧 드러나고 그러한 관계는 사라졌다

그 시간들은 꽤 오래된 일로 세월이 한참 지났다 그래도 불현듯 불쑥불쑥 찾아드는 이 마음은 같은 실수를 절대로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시에 관한 평론들을 쓰면서 손에 들어온 시들을 읽고 그 시 속에 들어있는 밥의 의미들이 와닿는 시를 만났다 때마침 어느 시인의 시에서 그때의 내 그 마음을 발견했다

그 시인의 삶이 녹녹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고 밥이 주는 의미에서 과거의 나를 생각하게 되었고 과거 그 어느 날 내가 느꼈던 그 젊은 날의 허허로운 날들에서 받은 상처가 떠 올랐다

그리고 마침 그 시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의 시를 읽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고 나는 그녀에게 그 시를 읽으면서 <따뜻한 밥을 사주고 싶다>는 생각을 말했다


'아니 내가 사야지요'

라고 말한다


'아니 제가 꼭 밥을 사고 싶어요 비싸고 거창한 밥이 아니라 엄마의 손에 갓 지은 것처럼 가장 따뜻하고 편안하고 소화가 잘 되는 밥이요'


'그런 밥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말만 들어도 따뜻하다'


면서 울먹였다 사실은 자신이 가장 힘든 때라고......

그래 누가 사든 어떤가 따뜻한 밥을 함께 먹자는데 ...

진심이 든 시를 읽으면 그 마음이 이해된다 물론 의도적으로 써 내려간 시도 그 의도가 보이지만 공감은 싶지 않다

특히 현실 속에서 그 시인이 한 일들을 잘 아는데 비단실 엮듯 훌륭하게 잘 써 내려간 시들을 보면 말이 나도 모르게 거친 말들이 쏟아진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다 시든 사람이든. 시를 읽으면서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은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이다 누구든 그럴 수 있다

'따뜻한 밥'은 어느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한 때 내가 겪었던 힘든 때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고 그 시기를 되새기면서 시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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