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복원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어서와 봄날』




악몽의 복원



지난밤, 흐린 기억 속에서 119의 미웅소리를 들었다 대학병원 응급실 눈이 큰 의사는 어디서 왔느냐 어디냐 아프냐는 자잘한 질문을 한다 천천히 대답하다가 꿈속으로 들었다 나의 옆구리를 가르는 쇠칼의 느낌 수술대 위에 쏟아부은 길고 붉은 나의 내장들 하얀 포르말린 용액에 헹궈져서 다시 나의 뱃속에 담긴다 살을꿰는 어둔한 느낌 잠시 헤어졌던 뱃살들이 당겨져 다시 만난다


나의 옆구린 갈로 전갈처럼 긴 지퍼가 달렸다

아니 비온 뒤 살 오른 토룡의 검붉은 춤사위처럼

긴 그의 몸놀림은 늘 나와 함께 한다

만지면 무감각한 살덩이 헤집고 땅을 헛디딘 날들이 기억난다

아름다운 감각들이 다시 뱃살로 돌아와

함께 지내겠노라고 칭얼댄다

사랑으로 눈 멀었던 곳에서 돌아온 나처럼

잊혀졌던 빈곳마다 튼살을 헤집고

서투른 모습으로 다시 내게로 온다

내가 나의 집으로 다시 돌아 온 것처럼



이 시는 큰 수술을 하면서 섬망에서 깨어나지 못하던 기록들을 토대로 쓴 시이다

이십 년도 훌쩍 넘은 일이다 동해안으로 낚시를 간 적이 있고 그곳의 방파제에서 떨어져 삐죽삐죽 삐져나온 바위에 배를 다쳐 기절을 하고 어느 병원으로 실려 갔고 살릴 자신 없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119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실려 간 적이 있었다

수술을 하고 깨어났을 즈음 한쪽 콩팥을 잃었다 이후 오랫동안 119 소리에 예민해졌고 수술 자국에 가려움을 느끼며 살았고 지금도 일부는 무감각한 부분도 있다

이 시의 전반부는 섬망에 대한 기억들을, 후반부에는 내가 과연 얼마나 쓸모 있는 일들을 위해 애를 썼던 것인가에 대한 반성을 담았다


내가 있고 나서야 꿈도 목표도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목표를 생각하고 목표를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달린다고 해서 그 목표에 쉽게 가닿을 수 있는 것은 아닌데 그때는 그걸 몰랐다

도달하기 위한 목표는 상실한 채, 남 좋은 일에 집중한 어리석음 정말 소중한 것들은 가까이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지 못한 어리석음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정말 소중한 것을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그 소중함은 어느새 점점 멀어져 가 버린 미련했던 나날에 대한 반성을 담은 시이다

정말 소중한 마음을 진흙탕 속에서 뒹굴고 난 후에야 다시 찾은 젊은 날의 어리석음에 대한 깊은 반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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