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바람은 바람을 안고
바다 한가운데로 떠나고
물결이 물결을 타고
수평선 넘어가면
벼랑 끝에서 흘러내린 한 점 섬처럼
바람은 파도를 껴안고 슬프게 부서진다
잊힐 것 온전히 잊혀져야
과거는 과거가 되고 섬은 섬으로 남는다
늘 새로운 얼굴로 밀려드는 파도
갈매기떼 떠나는 바다이고 싶다
마음이 상하거나 극심하게 고독한 날은 혼자 바다를 바라보거나 작은 통통배 혹은 유람선을 타곤 했다 그래도 혼자서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간 적은 살면서 열손가락 안팎으로 비교적 많지 않은 횟수이다
바다는 그냥 잔잔한 바다보다는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를 좋아한다 이곳 동해 파도는 대체로 언제나 그런 바다이다 서해의 매력이 잔잔함이라면 동해는 역동성이 출중하고 남해는 적당히 파도를 치기도 하고 잔잔하기도 하면서 둘의 특성을 잘 섞어 놓았다 우리나라는 반도국이지만 삼면의 바다가 갖는 특성이 다르다 보니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도 다르다 서해는 아주 담담한 마음을 지닌 장년처럼 여겨지고 남해는 중년, 동해는 청년처럼 느껴진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동해 파도는 더 무섭게 몰아친다 마음이 우울할 때에는 이 파도치는 모습을 바라보면 아주 속이 후련하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이 평온한 날 파도가 심하게 요동치면 살짝 불안하기도 하다 바다는 여러 모습을 지니고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또한 시시각각 변한다
파도를 받아들이는 바다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나 더 큰 마음이 요동치는 작은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알게 된다 바다는 파도를 품을 수 있지만 피도는 바다를 품을 수 없다는.
기억이나 추억은 언제나 시간과의 싸움이다 대부분의 기억이나 추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거나 또 경우에 따라서는 고갱이만 남고 대부분은 지워진다 때로는 파도처럼 순식간에 지워지고 전혀 새로운 얼굴을 하지만 바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르는 척 다 받아들인다 그런 바다의 마음을 닮고 싶었다
쉽지 않지만 마음그릇을 크게 갖고 싶었다 이 시에는 그런 마음을 담았다 하지만 지금도 내 마음 그릇은 그 바다를 닮지 못했다 작은 일에 슬프고 기쁜 소소한 것에 행복한, 그다지 크지 않은 마음 그릇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나 자신이 정말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제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그냥 나인 채로, 그냥 나로, 그냥 봐주면서 그렇게 매일매일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