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등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오늘 시』





안개등



네가 허공에 가득 찬 날은

슬픔의 안개등을 켠다


너의 눈빛 담아오지 못한 날은

두눈에 강물이 흐른다


가슴의 끈 닿지 못한 날은

슬픈 바람만 분다


너의 눈빛 내 가슴에 녹아들어도

너는 내 것이 되지 못한다


네가 허공에 가득한 날

나는 슬픔의 안개등을 켠다



참 오래된 시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생각하고 사랑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울면서 다시 만나고 행복하고 또 미워하고 사랑하고 다람쥐 쳇바퀴돌듯이 감정들이 몇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오고 다시 또 그런 감정들의 쳇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젊은 시절 한창때는 누구나 감정들이 한순간 천국과 지옥을 오가면서 요동치곤 했다 하지만 요즈음 그런 감정들도 그리울 때가 있다 이제는 그런 감정들이 마치 눈이 녹아내리듯 녹아서 황토흙 속으로 사라지고 맨 얼굴을 드러낸 민둥산처럼 이래도 그렇거니 저래도 그렇거니 한다

감정이 산을 이루던 그런 때, 폭발하는 활화산 뜨거운 마음으로 살았던 그런 때가 내게도 있었다는 마음을 되짚어보면서 새삼 나의 그런 때에 감사한다

윤동주시인이나 백석시인이나 고정희 시인의 시들을 정말 사랑하고 좋아한다 아마도 윤동주 시인은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부터 그의 시를 사랑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무수한 방식의 무수한 종류의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은 이루어지기보다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참 오랫동안 끈질지게 이들 세 시인의 시들은 처음 대하고 한결같이 좋아하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아니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깊어서인지도 모른다 오랜된 시를 꺼내 읽으면서 그즈음 어떤 친구는 나의 시를 읽으면서 줄곧 내가 시와 연애를 한다고 놀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여전히 시는 그 자체로 내게는 그런 존재이고 그렇게 살아온 것이리라 그냥 무작정 대책없이 시가 좋았고 지금도 여전히 일편단심으로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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