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오늘 시』





기적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저 새싹의

작은 몸에는 상처가

하나도 없다




한겨울 볕바른 곳에서 철없는 새싹이 나온다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얼굴을 쏙 내민다 세상에 새로 태어나는 것들은 다 같이 작고 아름답다 고양이도 강아지도 햄스터도 아기들도 모든 작은 것들은 최대한 예쁘게 보여서 모성애를 자극하고 그래서 살아남고 또 누군가가 키워주기를 바란다

아무리 메마른 가슴에도 작은 것들은 살아남는다 봄이 사라진 날들 속에서도 꽃은 피고 비비람이 지나간 곳에서도 살아남을 새싹은 살아남아 나무가 된다

오월의 푸른 날들 속에서도 1월의 엄동에서도 초록은 살아남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얻는다 사실은 기적이다 작고 아름다운 기적, 오늘도 일없이 바닷가를 걷다가 바위틈에 기대어 피고 있는 새순을 본다 아직 철이 아닌데도 저렇게 피어서 어쩌나 강원도 골짝에 이 엄동 피어서 어쩌나 싶다가도 그런 염려는 놓아버린다 기적이라는 게 있으니 저렇게 순을 올리는 것이고 순을 올렸으니 살아남을 테니까

다만 처음 고개 내민 땅이 풀벌레 사는 때가 아니고 깊은 눈덩이 속이라 너무 가까운 것도 너무 먼 것도 보지 못해 제 앞만 보고 살아남았나 보다 너무 키가 작아서 보이지 않아서 생각이 작아서 꿈이 작아서 그냥 살아남기만은 바랬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동에 귀한 생명이 잘 자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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