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오늘 시』




홈쇼핑




종일 켜놓은 TV 속에서

옷을 사라 신을 사라 이불을 사라

체리를 사라 김치를 사라 끊임없이 말한다


저 많은 옷장의 옷들을 어떡하라고

신발장을 꽉 채운 저 신발들은 어쩌라고

숨 쉴 공간도 없는 저 이불장은 또 어떻고

냉장고 속 꽉 찬 음식들은

먹어 없어져야, 단박에 없어야 살 텐데

딱하기 그지없는 저들의 목소리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눈은 보이지 않으니

빈 허공만 보이니 자꾸만 뭘로 채우라smsep

나더러 어쩌라고




쉬는 날이면 TV를 켜놓고 잡다한 일을 한다 때로는 들리기도 하고 대로는 하던 일에 빠져 TV 속 내용들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한 번은 홈쇼핑 내용들을 들어보니 마치 시청자들이 외계에서 지구로 방금 이사 온 사람 취급이다 아무 것도 없는 맨몸으로 지구에 뚝 떨어졌으니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그것도 사라고 말한다

파는 사람 입장에서야 많이 팔면 좋겠지만 사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서 말을 하는 게 마켓팅 전략이 아닐까 그런데 계절이 바뀌었으니까 오래 사용했으니 바꾸라는 게 아니라 아예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시청자를 대하고 판매에 열을 올린다

과연 이런 전략이 잘 먹혀들어갈까 자극적인 말과 화면으로 밀어붙이면 판매수가 늘어날까 내가 왜 이런 생각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광고에 대해 유감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 번은 시골 오일장에 간 적이 있다 장터국밥집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각양각색이다 주인 남자 노인이 TV를 보면서

'선전이 너무 많다'

고 투덜거리자 맞은편에 앉아 함께 밥장사를 하는 할머니가 '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소 저 거들도 다 먹고살자고 돈 들여서 선전하는 거 아이가 보기 싫으면 그 시간에 일을 바깥 일 보면 되지'

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할아버지는 두말도 않고 자리를 피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나는 할아버지 쪽인가 보다 세상을 여유롭게 역지사지해서 이해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되어보면 좋을 텐데 그게 잘 안된다 특히 긴 광고가 나오면 이 마음은 더 하다 하지만 그제야 사람들이 그 많은 광고를 틀어놓고 기다리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 뒤로는 그래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지 듣기 싫은 것도 보기 싫으면 그냥 두면 되는 거지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TV에 긴 광고가 나와도 그냥 바로 채널을 돌리던 습관이 이제는 게으름인지 그냥 둔다

매거진의 이전글생이 고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