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오래 묵어 향기 있고
척박한 곳에 살아 힘이 있다
쓰지 않으면 목마르고
읽지 않으면 눈이 고픈
스스로 가난하기로 한
그 이름
시의 소재는 일상 속에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최대한의 경험치 내에서 보관된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말들과 기억과 추억과 상황들을 재조합해서 가장 적절하다 여기는 표현을 하게 된다 마치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이 거미가 거미줄을 만들어 내듯이 그들은 살아내기 위해 실을 뽑지만 시인은 살아남기 위해 시를 쓴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은 본능이다 보고 느끼는 순간 바로 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2-3년을 묵혀 시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느 시가 더 좋은 시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순간순간의 시심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 상황에 나를 맞춰내는 것이다 그 상황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그게 말이 되냐고 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고 연륜이 쌓이면 저절로 되는 것 같다 감나무에 감이 세월이 흐를수록 나무에 달린 감만 쳐다 봐도 그 감을 먹지 않아도 감맛을 아는 것처럼 감에 대한 감이 오는 것처럼 사물을 만나면 시가 내게로 오는 느낌을 알게 된다고 감히 말 할 수 있을까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지만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이 또한 시이다 시를 다루는 솜씨가 성장하는 점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세월이 흐른다고 점점 나아지는 것도 결코 아니다 쉽게 써지지 않지만 문제는 현대사회 속에서 그것만 죽기 살기로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자꾸만 마음을 비우다보면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그 자체로 생의 대안을 삼기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시인이라는 이름만으로 평생을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한번 눈에 마음에 시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다 스스로 용서가 안되기도 한다 어쩌면 밑빠진 독에 시간붓기 일 수도 있다 그 밑이 빠진 독 그 자체가 언젠가는 시가 되기는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