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봄봄 봄봄』




여백




삶의 좁은 틈 사이 비집고

어느 결에 나의 곁에 서 있는

먼 곳에서 온 이가 있다


오래 견디다가 모두를 삭이다

만져지지 않는 말들 사이로

우두커니 그림자만 두고 떠난

바람같은 이가 있다


모두에게 가까운 순간은

손 놓아야 지나간다는 것을

그 위의 수많은 얼굴들이

텅 빈 단단한 틈사이에 박혀있다




동양화에 여백이 있어 여유로운 것처럼 인생살이에도 여백이 있다면 삶이 한층 부드럽고 여유로워지니 여백은 인생살이에도 꼭 필요하다 그 여백은 시공간의 개념으로 보면 틈이 된다 사람과 사람이 조화롭게 살아가자면 그 틈은 경우에 따라서 그 크기가 달라진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면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객관화가 되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불화하고 상처를 입게 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 상대를 보게 되고 자신이 겪은 만큼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산에 올라가 보지 않은 사람이 산 위에서 바라보는 광경을 알 수 없고 산 아래에서 바라보는 산과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는 같은 풍경일 수 없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같은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은 분명 소리가 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바라본 시야를 진실로 착각하고 상대에게 강요한다 다른 이면이 있고 다른 위치에서 보면 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즉 가진 게 많을수록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할수록 나이가 들수록 서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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