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구
인간의 삶은 그 종착지점을 왕왕 죽음에 둔다 누구나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기에 살면서 경험하는 단 한번 마주하는 가장 강한 극복하기 어려운 역경에 해당된다 죽어가면서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았는지 가까운 사람들을 더 사랑했는지에 대한 후회와 가치를 깨닫기도 하면서 좀 더 성숙한 채로 다음 단계로 이행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분노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를 들어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감정의 상태를 언급한다 죽음과 임종에 관한 연구를 해온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Elisabeth Kübler-Ross에 따르면 사람들은 부정 Denial 분노 Anger 타협 Bargaining 우울 Depression의 단계를 거쳐서 죽음을 수용 Acceptance 한다
골병든 잔등을 기댈 구석도 없다.
해답도 없는 길을 떠밀려 갈 뿐
황망히 사라지는 사람들의 어둠 저편을
빤히 쳐다본다.
어디쯤 도착하면 알게 될까
쓸쓸하게 웅크린 종착역
다시 되돌아갈 수 없을까.
유도등도 꺼지고 가로막는 차단기
역무원이 아득한 이승의 불빛을 흔들며
되돌아선다.
-이병구,「종착역」
이병구의 시 「종착역」에서는 직관적인 힘이 만들어 낸 꿈처럼 ‘종착역’이 화자의 마음에 와닿는다. 그래서 이 시에서 비언어적 요소는 시각화되어 있다. ‘골병’이라는 고통을 수반하는 시각적 요소에 해당되는 아픔을 비롯하여, ‘떠밀려’ ‘웅크린’ ‘되돌아선다’라는 시각적 요소들은 화자 자신이 말하려는 ‘종착역’ 즉, ‘삶의 끝’이 되는 ‘죽음’이라는 정보를 극대화시켜 전달하는데 필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그래서 이러한 요소들이 ‘변성’ ‘변형’의 과정을 거치면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행하는 데, 이는 화자가 생명이 보이지 않는 이승의 끝에 가서야 되돌아가는 불빛 신호를 본다는 내용에서 그 의미를 전달받게 된다.
한편, 이 시에 나타나는 시적 공간은 ‘종착역’이다. 하지만 그 역은 이승의 불빛이 꺼지면 필연적으로 도착하는 ‘죽음’이라는 이름만 다른 역에 해당된다. 그런데 화자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종착역」의 화자는 독백처럼 (죽음의 역을 향해)‘떠밀려 갈 뿐’이라고 말한다. 화자에게서 죽음이란 삶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지고 멈추는 ‘단절’을 의미한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끝’인 셈이다.
이러한 죽음관은 모든 생명이 맞이하는 자연스러운 결과이자 발전을 거듭한 결과에 도달한 최종의 모습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화자는 또한 ‘되돌아’ 가려는 욕구가 일어난다. 그리고 끝내 ‘되돌아선다.’는 점에서 볼 때, 화자의 시선을 죽음이라는 스승 덕분에 삶이 좀 더 완성된 모습으로 다가설 기회를 갖게 된다.
시의 화자는 삶의 공간에서 황망하게 퇴장하는 이들을 보면서 자신의 삶도 돌이켜보는 계기가 된다. 앞서가는 사람들을 통해 그 방법을 터득하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죽음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경계에서 되돌아서는 화자의 모습에서 유교적 가치관을 읽게 된다.
앞서 언급된 이들 세편의 시의 나타나는 비언어적 표현은 시각적이며, 각 시의 주제를 강조하고, 부연하는 효과를 지닌다. 하지만 공통분모는 ‘죽음’이다. 인간의 몸은 경험의 주체이자, 존재의 근거이다. 또, 인간의 마음은 몸의 경험을 토대로 나타난 결과물이다. 인간의 마음과 몸이 총체적으로 빚은 ‘삶’이라는 여행의 종착지는 ‘죽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