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범
살면서 채우기보다는 비우기가 훨씬 더 어렵다 사람의 마음은 명상 마음 챙김 등으로 다스릴 수 있다 명상은 보통 호흡 몸 행위 등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쉬는 수행법에 해당되며 그 목적이나 방법이 다양하다고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에 있다
마음 챙김은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수행이지만 이를 큰 범주에서 보면 명상과 특별히 나누어 구분하기보다는 병행된다 대체로 명상과 마음 챙김을 구분하지 않는 점 또한 수행의 결과 여부가 서로 구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외부적 환경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고 다루는 힘과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시도 내면 성장을 위한 원동력 삶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고 살아가는 힘을 길러 나를 알고 내 마음의 바라는 바를 깨닫고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기본적인 삶의 의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오는 편안 함할 때 누구나 느끼는 편안함이나 휴식 훈련은 누구나 비교적 가능하다 하지만 외부의 열악한 환경에서조차도 그러한 상태에 무관하게 스스로를 자족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성장하는 힘을 갖는 편이 훨씬 명상의 목적에 가깝다 명상은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삶 자체가 명상이어야 한다
숙연한 처형장에서도
노염 견디며
성성한 수염 휘날리고
목이 댕강 잘리는 순간에도
허허-웃었으리
비장함에 입 앙다물다 보면
저처럼 당찼으리
쟁반 위에 오른 절개
시험하는 나의 이빨
오히려 허전하다.
알참은 비워
비로소 完成된다.
-장동범, 「삶은 옥수수」
장동범의 시 「삶은 옥수수」 에서는 사람의 얼굴 표정이란 신체의 어떤 부분보다도 신뢰 깊은 메시지를 던진다. 독자의 입장이라면 응당 그 표현에 주목하게 된다. 시의 내용 중에서 ‘입 앙다물다’라는 표현은 화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결의가 보인다. 화자는 이 결의를 더욱 공고히 청자에게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강하고 당찬 의지를 확인하려는 장치로 보인다.
물론 이는 ‘허허 웃었으리’라는 표현을 보충하는 기능을 갖기도 한다. 독자에게 ‘목이 잘린’ 옥수수는 비장함으로 다가온다. 쟁반 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오는 허전함은 곧 깨달음으로 바뀌고 이를 깨우친 화자는 청자와 교감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또 이 시에서는 옥수수가 화자의 입에 들어오기까지의 전 과정과 그리고 형체의 사라짐으로 얻는 허망, 그리고 그로부터 문득 벗어나 자유로움을 갖게 되는 무상의 경지에 이른다. 세상의 모든 모양 있는 것은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형체가 있을 때보다는 형체가 사라졌을 때에 오히려 그 깊은 뜻을 더 잘 알게 된다.
그래서 외면보다는 존재의 내면이 가진 무한의 깊이를 생각하고 그 가능성을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도 알고 시간의 흐름이 無常에 이르는 인식의 정화를 도운다는 것도 잘 알지만 오욕칠정의 인간이다 보니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많은 일들도 이와 맥락에 놓인다.
삶아서 먹는 상태의 옥수수인지 인간의 살아가는 삶이 옥수수라는 은유적 표현인지에 대한 애매성을 지닌 제목 가운데서 옥수수가 살아온 삶의 이력과 관련지어 그 과정과 완성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스스로의 무의식에 내재된 명상과 마음 챙김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