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실
자신의 태도를 자발적으로 논리력 있고 일관성 있게 변화시키는 현상을 가리켜 '소크라테스 효과라고 말한다 니는 타자에게 질문을 던져 스스로 결론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부조화 상태에 빠지면 스스로 변화하여 조화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이는 자기 합리화의 효과를 갖는 점을 의미한다
이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한 가지는 상대의 태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확고하고 명확한 태도로 바뀌는 경우인데 결국 첫인상 태도를 강화시켜 자신의 생각을 명확한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취한 태도가 외부적 압력 없이도 시간이 흐를수록 논리적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산다는 것의 목마름은
폭양의 소금밭이었다
소금밭이 둥싯 떠오를 때면
웅덩이에 마른 정적이
고였다
그물처럼 엉클어진 기억들이
빽빽한 수풀에 걸려 버둥대다가
제 살을 저며 내었다
사각형 오각형으로
잦아들었다
무너져 내리는 생의 한계를
시지프스처럼 밀어 올리는
염부(鹽夫)의 팔뚝에
시퍼런 소금꽃이 떨어진다
청어 등짝에 한 줌
염장(鹽臟)을 질렀다
장아찌 같은 소금밭만
희디 흰 맨발이었다
-고훈실, 「소래 염전」
고훈실의 시 「소래 염전」에서는 ‘목마름’ ‘버둥대다’ ‘떨어지는’ 등의 비언어적 표현으로 화자가 처한 상황을 읽을 수 있다. 구체적 언어 표현인 ‘폭양의 소금밭’이 주는 의미를 강화하는 기능으로 이러한 비언어적 표현이 사용된다. 또 이로써 화자가 나아갈 방향을 찾게 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는 화자 자신이 이미 ‘소래 염전’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점을 다양한 비언어적 표현으로 각인시키는 효과를 얻는다. 반복되는 ‘시지프스’의 동작을 연상시키는 과정에서 또한 화자는 자신의 상황이 종료될 기미가 없다고 깨닫는다. 비언어적 행동이 연상되는 이 반복성은 이 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고리가 된다.
또 이 시의 화자는 마실 물 한잔 없는 ‘소금밭’ 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팍팍한 삶 속에서 자신에게 공감하고, 슬픔을 공유하고, 상처를 치유해 주고 위로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그 슬픔에서 화자는 충분히 잘 빠져나오리라 여긴다. 그러나 화자에게 삶이란 ‘수풀에 걸’리고, ‘제 살을’ 저미는 고통이 끝없이 반복되는 ‘소금밭’ 일뿐이다. 그런 화자는 위로받을 대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화자의 삶에서 그러한 존재는 찾지 못하고, 화자는 황량한 공간에 홀로 남아 있다. 그래서 화자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위로받기 위해 세상을 향해 온 슬픔을 다 밀어낸다. 다 밀어내서 그 슬픔을 희석시키려 한다. 삶의 문이 잠겨, 홀로 팽개쳐진 듯 그 공간 속에서, 삶이 많이 힘들고, 아프다고 세상을 향하여 손을 내민다. 누군가의 도움 손을 내밀지 않고, 같이 아파해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그 아픔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고통에서 빠져나와 이를 해결하려 한다. 급기야 자신을 존재하게 했던 그러나 자신을 짓누르던 슬픔을 조금씩 걷어내면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누구나 타자의 고통은 다 알 수 없고, 다 헤아리지도 헤아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설사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해도 당자가 갖는 고통으로 송두리째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감정의 덩어리가 온전히 모여 당사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 시에는 ‘소크라테스 효과가 나타난다. 이는 심리적 好惡의 감정을 나타내는 태도를 일컫는다. 이 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발적으로 강화되거나 자기 태도를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게 변화시킨다. ‘신동구례마을’(조민자), ‘삶은 옥수수’(장동범), ‘휴대폰’(이혜화),‘소금밭’(고훈실), 등이 그것으로 ‘휴대폰’, ‘삶은 옥수수’를 통해 화자는 논리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소금밭’ ‘신동구례마을’의 경우는 화자의 감정이 격앙 강화되는 성향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실생활에 사용되는 다양한 언어로 그 시인의 마음속에 있는 상(象)을 어떤 사물이나 관념과 연관 지어 시를 쓴다. 물론 그가 사용한 언어로 허공에 자신의 내면을 그려내듯, 혹은 읽는 이에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는 사고의 습관은 문화나 경험을 공유할 경우라면 유사한 감정을 느끼거나, 대체로 공통된 개념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유사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완벽하게 동일한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사소한 감정이라도 시인의 섬세함과 감정의 진화가 씨줄, 날줄로 엮이고, 그들의 시적 감수성은 내면이라는 빈 산실에서 언어적 표현이라는 진화 과정을 거친 욕망들은 곧 시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