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by 김지숙 작가의 집

김기덕


E. 퀴블러로스에 따르면 대개의 경우, 우리는 부정Denial 분노Anger 협상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을 거쳐 인정하고 이별을 받아들이게 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하려는 부정, 상대에게 전달되지도 않는 분노를 겪으며 좌절하거나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을 유예하는 타협의 과정을 거쳐 길고 힘든 회복의 길에 들어서는 진짜 감정에 해당하는 우울을 극복하고 나면 현재에 전념할 수 있는 수용의 단계에 이른다 이는 남녀 간이거나 부모자식 간이거나 남남 간이거나 신과의 관계에서 혹은 자신의 죽음이나 타자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지하는 것조차도 이 과정을 거치게 된다



떠나는 자는 마지막 화살을 쏜다. 가장 강렬하고 치명적인 기억을 남기고 간다. 마지막 살에 급소를 맞은 자는 따라서 죽음을 맞거나, 평생 흉터처럼 기억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아무에게도 추억을 남기지 않고 가는 사람은 살아 있어도 이미 죽어 있었다. 화살을 피하고 싶다. 난 왜 어머니의 마지막 화살을 피하지 못했을까. 즉사의 명중은 피했지만,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입었다. 나는 또 하관(下官)의 순간 누구의 가슴을 맞출 것인가. 사라지는 자는 말이 없는데, 마지막 화살은 누군가의 가슴에 박혀 있다

-김기덕 「마지막 화살」일부





가족은 동질성으로 뭉친 최소 단위의 집단으로 연결고리로는 ‘혈육’과 ‘사랑’이 절대적인 요인으로 자리 잡는다. 모성애는 누구에게나 나타나지 않는다. 먼저 태어난 자식이 많거나 막 태어난 아기로 인해 경제적으로 힘든 경우, 아기의 자질과 상황을 저울질한 후 아이에 대한 투자와 헌신을 결정하며 다양한 이유로 모성애와 유대감은 자동 발생적이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화자는 지관이 ‘살(殺)을 피해 등 돌린 사람들은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지만 어머니가 쏘는 마지막 화살을 화자가 맞았다면 지관의 말을 수용하지 않았다. 생을 마감하면서 쏘는 어머니의 화살에 명중되지 않아서 죽음을 피하지만 강렬한 상처를 입었다. 평생 흉터처럼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어머니가 떠나면서 쏜 마지막 화살의 의미는 무엇일까 강렬하고 치명적인 기억은 또 무엇일까 마지막 순간을 잊지 못하고 화살에 맞은 상처처럼 한 기억을 떠올린다. 화자가 ‘피하고 싶’었던 화살인데 ‘왜 어머니의 마지막 화살을 피하지 못했을까’라고 후회 한다. 심장을 관통하는 화살은 아니었지만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입었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쏜 마지막 화살’은 실은 화자의 어머니를 향한 강한 사랑인지 모른다. 타인의 죽음 앞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투사하고 과거를 반추한다.

공기나 물처럼 언제나 가까이 있지만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고마움이나 사랑을 쉽게 표현하지도 못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가정사에 슬퍼하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공감을 느끼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쉽게 사과하지 못하고, 더구나 혈연관계에서 오는 기대치와 서운함 앞에서는 감정조절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화자는 평소 소홀하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마지막 순간에 깨닫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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