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로 다른 삶의 상징

서론 . 이원도·최원준

by 김지숙 작가의 집


서론



신칸트 학파 E.카시러는 사람을 ‘상징적 동물’(Symbollizing animal)이라 규정하면서 인간이 상징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에 대하여 최초로 주목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상징적 우주에 살고 있으며, 언어는 상징의 그물을 짜는 실이요, 인간 경험의 얼크러진 거미줄이 된다. 또 인간은 언어형식, 예술적 형상, 신화적 상징 혹은 종교적 의식에 너무나 둘러싸여 있으므로, 이러한 인위적 매개물의 개입에 의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시인은 상징을 만드는 능력자로 자신의 삶을 각형각색의 상징화를 거쳐 시화한다. 지난 가을, 부산 시단에 발표된 시들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추억을 그리워하거나 이들을 시의 불로 지펴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시에 표현된 다양한 일상들은 따뜻하고 안락한 공간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것은 ‘집’이라는 상징성으로 결집된다. 시에서 ‘집’은 시인의 무의식과 본능의 세계를 상징한다. ‘집’은 세계의 중심을 상징하며, 모든 사물들이 들어 있다는 의미에서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 정신분석학자들이 경험적으로 확정해 온 바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 인간의 사고, 인간의 삶을 상징한다. 소로의 경우, 집은 ‘따뜻하고 안락한 장소’, 무의식과 본능의 세계로 들어가는 공간의 의미를 가지며, 인간을 보호하는 여성의 원리를 상징한다. 집은 이니시에이션(initiation) 의례에서 집은 ‘자궁퇴행’ 즉 다시 살아나게 될 신생에 앞서 암흑으로 떨어짐을 나타낸다.

본 고는 지난 가을의 『문학도시』(2005.가을호), 『동아문학』(5호), 『신생』(2005, 가을호), 『시와 사상』(2005, 가을호), 『시와 사상』(2005, 가을호), 『작가와 사회』(2005.8.30) 에 실린 시들 가운데 시적 지향점이 ‘집’인 시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으며, 또한 한경동 시집 『빛나는 상형문자』(2005. 8) 속에 '집’을 지향하는 시들을 대상으로 살펴보았다




닫으려야 닫칠 것도 없는 바람빗장대문

비행선처럼 사뿐히 차고 내려와 여보,

당신 손이 오늘따라 무척 차갑구려, 과거의

구정물엔 손 담그지 마라고 당부했건만,

노부부의 묵은 정담이 소담스레

별꽃으로 피어나는 것이겠지요.

학소대 서재를 찾으시려거든

가슴이 패었다거나 무릎이 드러나는

명품의상은 본때 없습니다.

학소대 서재는 행길보다 낮아서 밖에서 안이

훨씬 더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매화가지에 눈꽃 쟁쟁거리는 날은

가급적 학소대를 찾지 마십시오

머뭇머뭇 움츠려드는 햇순 때문에

당신의 봄 마음이 상처받을까 두렵습니다.

그래도 학소대 주인을 만나시려거든

세상을 비질하느라 덕지덕지 더께 낀

김재환 수필가의 문패를 찾기보다는

부산교육대학교 후문 마중길 끝점에서

욕심 버리고 세상 잠시 내려놓고

푸른빛이 나도록 툭툭 죽지 터지십시오

덕지적지 홈 파인 적송나무 주걱 같은

푼더분한 손 마중이 있을 겁니다.

-이원도,「학소대」일부-



열어놓은 현관문으로, 다른 공간의 나비가, 서재로 날아듭니다. 너무나 자연스런, 나비의 등장에, 서재의 정물들이, 일제히 흔들립니다. 나비 한 마리의 존재가, 내가 내 서재를, 온통 희롱하고 있습니다. 책상과 책들은, 나비의 궤적을 좇아, 새로운 생각에 여념이 없습니다. 모두 나비에게, 집중되는 시간, 그러나 나비는, 어느새 그의 공간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나비는 세재에게, 잠깐의 시간과 손톱만큼의 공간만을 빌렸을 뿐인데, 내 서재는 잠시 끼어든 나비의 틈을 좀처럼 메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원준「나비」


이원도의 시 「학소대」에서 ‘집’은 소박하고 질팍해 보이지만 무척 따뜻한 공간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그러한 이 ‘집’의 따뜻함은 ‘서재’로부터 시작되며, 이 곳은 밖에서 안이 더 잘 보이는 개방된 공간이다.

이 공간에 들어서기 위해 화자는 사람들이 자기의 욕심도 버리고 세상조차 내려놓으면 ‘푼더분한 손 마중’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한다. 명품의 의상이 어울리지 않는 곳, 가슴 패인 옷 무릎 보이는 옷은 더더구나 어울리지 않는 곳, 노부부의 정담이 소담스레 별꽃으로 피어나는 곳이 바로 시의 화자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무척이나 화목하고 다정다감한 화자의 소박한 삶이 엿보이는 공간이기도 한 이 집에 사는 화자는 무척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원만한 삶의 여정을 살아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최원준의 시 「나비」의 화자는 집 가운데서도 서재에 존재한다. 화자는 서재에 날아든 나비의 존재로 혼란스럽기만 하다. 서재로 날아든 나비는 서재를, 화자를 희롱하고는 새로운 생각에 취해 화자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다시 날아가 버린다. 나비가 서재에서 날아간 뒤에도 화자는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이 시에서 ‘집’은 화자가 정서적으로 안락하고 평온한 상태로 안주하고 있던 공간이었으나 어느 날 느닷없이 날아든 나비의 존재로 그간 화자가 누려왔던 안락함이 온통 뒤흔들린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가 존재하는 ‘집’이란 어떤 존재의 방문에도 끄덕 없는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가 나타날 때마다 여지없이 흔들리는 불안한 공간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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