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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수 · 조해훈 3

by 김지숙 작가의 집

다음 시들은 산업화된 물질문명으로 야기된 현실의 부정적인 외부 상황을 만나고 있다.



눈동자에 광채 선명한 그림자 하나

달빛에 선다

죽어도 문명이 던져 주는 먹이는 거부한다.

지금 당장 숨통이 끊겨도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을 영혼들이

아직 넁기가 남아 있는 봄 밤

이리저리 날개를 뒤척인다.

코흘리개들이 던져주는 콩 한알에도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따라다니는

동지들은 이제 노동의 신성함을 완전히 망각해 버렸다

허기진 몇몇은 밤 새 남도에서 실려온

곡물차량의 뒤통수를 습격한다.

죄의식을 상실한 위장들이 낟알을 강탈하고

더러운 배설물을 아스팔트 위에 뿌려 놓는다

거리를 배회하는 초점 잃은 시선들

평화의 상징이 허물어져 내린다.

과식하여 당뇨병에 걸린 놈이 다 생길 정도이다

그런 놈들이 공원 한 구석에서죽음에 직면하는 것을 보면서도

오늘 다시 용두산 공원엔

허공에 뿌려지는 콩을 따라 ,

한 떼의 비둘기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관광객들을 알현한다.

— 강달수「용두산 비둘기-자본주의의 틈새 4」


옛사람들은 책이나 말로 남기더라

사람이고 물이고 세월이고 흘러야 할 첫은 흘러야 한다고

세상과 섞이면서 새로움과 조우를 해야 한다고

깊은 산에서 흘러내리는,내가 아는 계곡물은

사시사철 가까운 바다로 나아가다 어느 날 그만 두었다

스스로 멈춘 게 절대 아니었다. 마음과는 달리

스스로 멈춘 게 절대 아니었다. 마음과는 달리

인간,문명에 의해 생애가 뒤틀려버린 것

모든 생명을 기형으로 만들 수 있는 곳에서, 힘으로

강압적으로 계곡 중간에서 낚아채 가기 때문이다.

비가 내릴 때면 친구들이

다리걸에 앉아 소쿠리로 잡던

꽃게와 가물치도 흔적없이 빨려 들어간다.

그 말라버린 계곡에 어느 농부가 농사를 지으려고

경운기로 물을 퍼대붓고 부어도 소용없어 내팽개쳤다.

깊은 산은 그걸 모르고, 한 겨울에도 얼음 밑으로 물을 내려 보낸다

사실대로 말을 못하면서, 밀려 내려오는 물은 얼마나 한스러울까

물이 흘러오지 않아 기다리던 바다가 가금 계곡으로 마중 나온다

남세스러워 그것도 달마저 뜨지 않는 밤에

— 조해훈 「흐르지 못하는 물」


인생의 목적은 쾌락을 갖는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밴덤 ( JBandm)은 인간행 동에서 쾌락이 고통보다 큰 가치가 있는가 어떤가의 여부를 보여 주는 계산서까지 냈 다 . 그리고 그는 쾌락이 고통보다 더크다면 그 행동은 행동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 이라는 단정까지 지었다 . 그의 이러한 견해는 현대인들의 가치의 척도가 바로 물질 쾌락에 있음을 그리고 자신의 존재 가치 역시 물질의 척도로 환원된 것임을 알 수 있 다

시 「용두산 비둘기-자본주의의 틈새 4」에서의 화자는 기술문명이 가져다준 물질본위 적 생활속의 잘못된 변회를 포착해 내고 있다 코흘리개가 던져주는 콩한알에도 고 개를 쪼는 비둘기를 통하여 자연상실에 대한 분노를 표현 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먹이를 구할 길이 없는 비둘기는 곡물 차량을 습격하기도 하고 과식으로 당뇨에 걸리기도 한다 .

이러한 용두산의 비둘기는 이제 더 이상 평화의 상징도 아니며 자신의 생명 보존을 위해 신성한 노동도 하지 못한다. 자신의 본분을 망각해 버린 비둘기의 파괴된 비둘기의 삶의 모습을 통해 이미 파괴되어버린 인간의 삶의 현장까지 망가져버렸음을 읽어내고 있다.

인간의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비둘기도 마찬가지이다. 「흐르지 못하는 물」에서의 화자는 물질문명의 발달로 자연환경은 오염되었고 이로 인해 황폐해져가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마음은 고갈되어 가는데 마음이 쓰인다.

소벤덤의 말대로라면 인간은 더 가치가 있다고 여기던 쾌락을 추구하다가 마침내 훨씬 더 가치가 없는 고통의 늪 속으로 빠진 셈이다. 시의 화자는 급격하게 변화된 자연환경으로 생명체가 제대로 피어나지 못하는 것에 마음 아프고 남부끄러운•듯한 달처럼 화자 자신도 이에 무척이나 신경이 쓰인다

이렇게 염려하는 화자의 마음도 소용없이 기형이 된 생명체는 사라지고 만다. 말라버린 계곡에서 물을 퍼부어도 소용없어 이를 내팽개치는 농부의 심정도 모르고 깊은 산 아래로 물을 홀려 보내는데 그러한 점이 부끄러워 달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다. 급격하게 변화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당혹감,불안감, 괴리감 등이 나타난다.

이들 시에서는 파괴되어가는 생태계의 비극적인 상황과 이로 인한 현재 진행 중인 현실의 황폐함이 화자 자신의 무기력과 결부되어 비극적 상황만 난무한 속수무책의 현실을 표현한다. 시에서 인간은 자연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가학적 존재가 되고 있다 인간은 동식물과 더불어 생명 공동체로 살아가야 하는 상호 공존적 존재이지만 스스로의 명분을 내세워 자연환경을 절망적인 상황으로 지금까지 이끌어 왔다.

앞서 언급된 두 시는 이러한 인간의 자연에 대한 폭력적인 반생태적 행위를 아이러니로 고백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들'이 화해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는 바로 인간 자신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생명성과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사랑과 관심을 갖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연복원이라는 패러다임과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사물의 본질과 만남으로써 비로소 시를 쓰게 된다. 자연을 향해서,혹은 인간을 향해서 혹은 사물을 향해서 시인이 마음을 열면 그의 특별한 감동과 만나게 되고 삶과 만나게 된다. 그런가 하면 가장 적절한 언어로 그 만남들을 표현해 낼 때, 비로소 시는 탄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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